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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5-22 12: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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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을 위해 옷을 갈아입다 거울 앞에 선다. 거기 웬 낯선 사람 하나, ‘당신 누구요?’ 말없이 눈으로 신원을 확인한다. 그가 역시 말없이 대답한다. “바보, 너도 몰라?” 순간 내 몸을 훑어본다. 옷을 입은 모습도 얼굴도 모두 낯설다. 방을 나서서 거실 옆의 큰 거울 앞으로 가본다. 그런데 전신이 비쳐 보이는 모습은 더 낯설다. 내가 나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 아이러니, 내가 나에게 낯설다는 사실 앞에 어지간히 나도 당황한다.


요즘 나는 가급적 정장을 하지 않으려 한다. 30년이 넘게 어쩔 수 없이 넥타이를 맸으니 이젠 싫을 만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넥타이를 하면 나를 옭죄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갈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문단 대 선배이신 노 교수님께서 학생들 앞에 설 때는 최고의 예의를 갖춰야 한다며 그래서 넥타이를 매는 것이 옳다고 하셨다. 맞는 말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너무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 딴엔 최대한 그런 거리감을 좁혀보려 복장에 신경을 써 보는 것이지만 20년이 넘는 나이차의 벽을 허물 수는 없는 것 같다. 정장이건 편한 복장이건 관계치 않고 어려워한다. 그래도 가급적 경망스럽지 않은 편안한 복장으로 그들 앞에 서 보지만 그런다고 거리감까지 좁혀지진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따라 거울 앞에 선 내가 이렇게 낯설어 보이는 것은 또 하나의 충격이요 절망이다. 모두들 나를 젊다고 했다. 실제 나이보다 10년쯤 낮춰보기도 했다. 때로는 그게 싫었다. 너무 어린취급 당하는 것 같고 마치 아직 철 안 든 아이 같기도 해서다. 나이만큼 위엄도 있어 보여야 하는데 내게선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질 않나 보다. 그래선지 문단의 어른들은 나를 아주 편하게 대해 주신다. 그러나 그보다 젊은 축에게선 빠져나갈 수 없는 나이 든 사람이 되니 젊어 보인다는 말도 다 믿을 건 못 되는 것 같다.


고사(古事) 속에도 거울 이야기가 있었다. 사마천의「사기」와 함께 동양 최고의 역사책으로 평가받는 송나라 사마광의「자치통감」은 전국시대부터 송나라 이전까지의 1,400년 동안 역사를 기록한 중국 역사서다. 그런데 사마광은 이 책에서 당 태종 이세민의 인품을 특히 높이 평가하면서 세 개의 거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태종은 “동으로 거울을 삼으면 의관이 바른지를 알 수 있어 자신을 볼 수 있고, 역사로 거울을 삼으면 나라의 흥망성쇠와 한 가정의 미래를 볼 수 있고, 사람으로 거울을 삼으면 그 사람을 소중한 재목으로 삼을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해서 그는 적국 신하였던 위징을 등용해 자신의 옆에 두고 직언과 비판의 상소를 올리게 했다. 신하들이 이를 몹시 불편하게 여겼음에도 그를 항상 오른편에 두었다. 그러다가 그가 세상을 떠나자 크게 슬퍼하며 비문을 세웠는데 “이제 위징이 죽었으니 나는 거울 하나를 잃고 말았구나.” 했다고 한다. 비판의 상소를 쉬지 않던 위징은 왕의 거울이었던 것이다.


나는 태종 같은 통치자도 아니다. 그러니 세 개의 거울까지 필요치도 않겠지만 거울이란 것이 비쳐보는 사람을 바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는 데엔 이의가 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거울을 자주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외모를 잘 건사하여 추한 꼴 보이지 말라는 말도 되겠지만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혹시라도 보기 흉하게 흐트러진 모습이 되지 않도록 점검하면서 반성하고 다짐도 하며 관리를 제대로 하라는 말일 것이다.


내 외할아버지는 참 멋쟁이셨다. 그러니 거울도 자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주로 일본으로 외유 중에 몸을 많이 상하여 치료한다고 독한 약을 먹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안면에 마비가 오고 얼굴이 한쪽으로 쏠려버렸다. 할아버지는 그때로부터 거울을 안 보셨단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 아주 컸을 그 충격과 절망을 거울과 결별하는 것으로 합의를 본 것 같다.


나들이를 위해 할머니가 경대 앞에 앉아 머리를 만지는 모습도 참 보기 좋았다. 거울에서 일어나셨을 때의 할머니 모습은 아까의 모습이 아니었다. 거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외모가 바르면 마음 씀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거울은 외모를 아름답게 하는데 꼭 필요한 도구이지만 거울을 통해 마음가짐도 바로 하라는 말로도 듣는다.


다시 거울 앞에 선다. 찬찬히 보니 내가 맞다. 낯선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사람들은 늘 기대치를 갖고 산다. 그런데 그게 자신에 관한 것이면 가혹할 만큼 인색하다. 그만큼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말일 게다. 그러나 어느 순간 마음을 누그러뜨리면 그 정도에서도 만족해지거나 괜찮다고 협상이 된다. 거울 속의 모습은 중년을 넘어 초로의 얼굴이다. 얼굴뿐인가. 전체적으로 풍기는 모습도 인생 후반부로 보이고 느껴진다.


거울은 거짓 없이 사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보이는 그것을 인정 못한다면 그게 문제다. 하지만 사실이 다 진실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삶은 사실과 진실을 혼동할 때가 많다. 물론 거울 속의 모습에서 진실까지 볼 순 없다. 그래서 마음의 거울을 가지라 한다. 사마광처럼 동(銅)거울, 역사거울, 사람거울까지는 다 못 가져도 동거울과 사람거울만은 나도 갖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내 외모를 비쳐보는 거울과 내 진실을 볼 수 있는 양심의 사람거울을 수시로 들여다보면서 내 외면과 함께 내면의 모습도 닦고 가꿔야 할 것이다.


거울 속 나의 얼굴 모습이 아까보다 훨씬 밝아져 있다. 젊어 보이기도 한다. 마음 상태에 따라 몇 년은 더 젊어 보이게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거울 속의 내가 살짝 웃는다. 좀 멋쩍긴 하지만 아까보다도 부드러운 인상이다. 아무래도 나도 이제는 손바닥거울이라도 하나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얼굴을 비춰보며 표정도 관리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내가 나를 낯설어 하진 않을 것 아닌가. 그런데 거울 속의 그가 나를 보며 “바보, 자기가 자기도 모르는 바보” 한다. 하지만 나도 “이젠 나인 줄 알아.” 응답한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내가 낯설었다는 사실이 영 개운치가 않다. 그러고 보면 외모 뿐 아니라 내 내면은 더 낯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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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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