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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5-22 12: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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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비정부 비영리 과학연구 단체 막스 플랑크 협회(Max planck gesellschaft)가 있다. 이 협회에는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 등과 관련된 80개의 산하 연구소가 있고, 1948년 이후 노벨상 수상자 18명을 배출했다. 그 중에서 라이프치히에 위치한 진화인류학 연구소의 소장인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라는 교수가 진화심리학적 방법을 이용해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타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발달심리학자인 토마셀로는 생후 18~24개월 된 어린이와 침팬지의 행동을 비교 연구한 결과, 원숭이가 보이는 합리적인 이기성과는 다르게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타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타고난 이타적 본성에 따라 반복적 협력을 하고, 마침내 사회와 제도를 만들어 낼 수 있었고, 결국 인간이란 특수 종을 성공적으로 탄생시켰다. 모든 동물들의 “문화들”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모방과 착취적인 과정들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비해서 인류의 “문화들”은 착취 뿐 아니라 “협력적” 과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호모사피엔스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집단 내에서는 협력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적응을 하면서 진화해 왔다. 인간의 가장 특징적인 인지적인 성취물, 즉 복잡한 기술과 언어와 수학적 상징과 복잡한 사회 제도들은 모두 각자 홀로 행동하는 개인에 의해서 진화된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라는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결과들이다. 어린이들은 성장하면서 점차 이러한 협력적인 집단 사고에 참여하게 된다고 한다.


어느 어른이 방금 전까지 그리고 있던 그림을 다른 사람이 잡아채서 찢는 모습을 유아가 지켜보게 했다. 그림을 찢는 순간 유아는 아무 표정 없이 희생자를 바라보았지만 분명히 “염려하는” 상태로 인식할 수 있는 표정을 보였다. 그리고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면 유아들은 그림을 빼앗긴 어른을 더 많이 도와주려고 했다. 이는 유아가 희생자의 고통과 마주하게 되면 선천적으로 생겨나는 공감과 동정이라는 반응이 유아들의 도움 성향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어린이는 “보상” 때문이 아니라 이와 같은 “염려”가 도움을 주려는 동기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 같은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는 광범위한 협력행동들이 무엇 때문에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것일까? 만일 자신의 유전적 후손을 남기는 것만 목표였다면 이러한 이타행동은 진화 과정에서 자취를 감추었어야 했다. 이타성이라 하는 선천적인 “씨앗”이 없었다면 이타적 성격을 지진 사회, 제도, 이념, 규범, 종교 등도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아는 침팬지와는 다르게 단순한 도움부터 유용한 정보전달, 자원의 공유까지 다양한 협력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어떠한 문화적 영향도 받지 않는 유아에게도 이런 이타적 협력행동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이타 행동이 “선천적”이라는 증거가 된다.


많은 연구자가 인간은 본래부터 선천적으로 생존과 이익을 위해서 투쟁하는 존재이고, 이러한 이기적 본성을 통제하기 위해 각종 제도와 관습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토마셀로 교수는 실험을 통해 이런 생각에 의문을 던진다. 유아들은 두 손에 가득 물건을 든 어른을 위해서 문을 열어 주기도 하고, 실수로 빨래집게를 떨어뜨리게 되면 집어주기도 하며, 건너 방에 있는 건전지를 갖다 주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유아는 이러한 도움에 대한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실험 장면에서 어떠한 도움 행동을 했을 때, 대가로 장난감을 주면 그 후에는 오히려 돕는 행동 빈도가 떨어졌다. 유아가 상대방을 돕는 것은 보상이 아니라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남을 돕는 내적 동기 때문이라는 증거다. 이는 협력하지 않고 있던 침팬지가 먹을거리를 주게 되면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행동이다.


유아는 본능적으로 협력하고자 한다. 물론 많은 영장류들도 비슷한 협력행동을 보이지만 그것은 사냥과 같은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경우에만 나타난다. 그러나 유아들은 어떠한 목적이 없더라도 협력 행동을 한다. 실험실에서 침팬지는 보상이 주어질 때만 협력행동을 하였지만 유아들은 뚜렷한 보상이 없어도 협력을 했다. 유아는 도구적인 목적보다는 협력 그 자체에 흥미를 보이는 것 같다.


침팬지에게 “나는 포도 8알, 너는 2알”의 조건과 “각각 5알”이라는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고, 상대방 침팬지가 이를 수용할지의 여부를 관찰했다. 실험에서 대부분 침팬지는 자기들의 이익만을 극대화 시키는 공평하지 못한 먹이 분배를 제안했고, 상대방에게는 2알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제안했다. 즉 침팬지는 공리주의가 말하는 합리적 극대화의 원칙에 따라서 행동한다는 것이다. 대를 위해서 소는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이 동물이 보이는 합리적 극대화 행동이다. 먹이가 부족하게 되면 집단 전체의 생존을 위해 가장 약한 개체를 포기하는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한 학생을 왕따를 시켜 더 많은 학생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래서 동물적 공리주의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동물의 이와 같은 합리적 극대화 행동을 넘어선 인간 특유의 행동 원칙이 있다는 사실을 유아의 행동에서 발견했다. 간단히 말하면 만족하는 돼지보다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고, 만족하는 바보보다는 차라리 만족하지 못하는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는 자유주의적인 사고를 한다. 유아의 이타적 행동은 공리주의 이상으로 더 공평한 것을 실천하기 좋아한다. 


유아는 먹이가 있으면 서로 동등하게 나누려 한다. 가끔씩은 더 많이 차지하려는 욕심쟁이 아이가 나타나도, 상대방이 항의하면 곧 받아들인다. 이러한 행동들은 유아가 선천적으로 공평함을 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다. 즉 일반적 생각과는 다르게 인간은 문화 영향을 받기 이전부터 “합리적 극대화”가 아닌 “공평감의 감각”에 따라서 이타적 행동을 하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유아는 어떤 사람이 협동적인 사람인지를 서서히 관찰하면서 사회적인 제도를 터득해 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 행동을 반복하면서 믿을만한 사람들과 믿지 못할 사람들을 구분하게 되고, 협력 효과를 높이면서 배신자를 막아 낼 규칙을 만들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공동체와 사회와 국가를 형성하게 되고, 이런 규칙을 지키는 제도와 법률이 생겨났다. 즉 오늘 날 사회와 각 제도의 가장 밑바닥에는 공평한 이타성이 선천적으로 내재해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 옳다.


진화론은 약육강식 세계관이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동물들은 DNA의 복제를 위한 이기적인 “생존 기계”라는 도킨스의 주장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렇지만 현대 진화이론의 관심사는 끊임없는 생존경쟁이라고 전제하는 세계보다는 어떻게 사람들이 모여서 협력하고 사회를 구성하였는가 하는 이타적 문제에 관심이 더 가게 된다. 현재 가장 중요한 진화심리학자 중 한 사람인 토마셀로는 이런 문제에 혁신적인 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언어규범을 습득하기 이전인 출생 후 24개월 미만 유아행동과 침팬지의 행동을 비교하여 이타성과 협력성은 교육과 사회화를 통해서 “구성”되는 것이 아닌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답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공평한 본성적인 협력성이 반복되면서 다른 영장류와 구별되는 제도와 규범들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인간이란 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타고난 공평한 이타적 협력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가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해도 공평치 않거나 협력적이지 않거나 이타적이 아니라면 공평과 협동심과 이타성의 문제를 지적하게 되고, 그렇게 해도 시정되지 않는다면 강력하게 항의와 투쟁도 불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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