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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4-27 05: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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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참가자들이 19일 서울 강북구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4월혁명 63주년 민족민주운동단체 합동참배식`에서 분향하고 있다.


“미국의 조나탄 이스라엘 프린스턴 대햑 프랑스혁명사 대석학은프랑스 르몽드지와 회견에서 “1789 프랑스대혁명은 언제나 현실이다”고 선언했다“(2015년7월)


2023년 4월19일 63회 4.19혁명 기념일을 수유리 4.19 희생자영령들이 모셔진 수유리 4.19묘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4.19민주혁명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4.19혁명 공로자회 회원들과 많은 4.19혁명세대, 보훈부, 추모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 


한국의 4.19혁명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과 같이 세계에서 두 번째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가져온 아시아지역 20세기 대혁명이다. 


프랑스혁명이 루이왕조의 봉건 전제주의체제를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최초로 인류의 보편적 진리로 규정하여 선포한 역사상 최초의 대혁명이었다면, 4.19혁명은 아시아 최초로 이승만의 영구집권 독재를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세운 위대한 혁명이었다.


프랑스대혁명은 나치독일의 2차대전으로 프랑스에서 일시 숨죽였지만 드골장군과 레지스탕스, 파리 시민들의 저항운동으로 승리함으로써 1945년 7월에 파리에서 부활, 오늘까지 자유민주주의의 원조 지위를 잃은 적이 없다. 


4.19혁명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1년 전 자유민주주의 복구와 선양을 공약한 윤대통령과 우파-중도적 국민의힘이 승리함으로써 기사회생하였다. 4.19혁명 1년여 후 5.16군사혁명이 일어나면서 거의 30여년을 군사독재 밑에서 신음하였다. 


1963년 6월 반일시위, 1977년 민청학련사건 등 대학생 항쟁도 자유민주주의를 구하지 못했다. 전두환 군사정권 7년 후, 1987년 6월 항쟁이 승리했으나 자유민주주의는 복구되지 않았다. 


6월항쟁 후 김영삼(YS)정권이 민주주의 복구의 의무를 지고 출범했으나, 그 후 종북주사파 세상으로 신음해야만 했다. 세계가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면서, 베를린장벽 붕괴에 이은 1992년 고르바초프의 극적 공산진영이 해산함으로, 세계가 거의 자유민주주의시대로 통합되었지만, 한국은 예외였다.  


김대중(DJ)정권도 자유민주주의체제 복구에 역부족이었다. 386주사파 세력을 DJ가 대거 공천함으로서 북한 김일성의 졸병들이 ‘민주당’의 가면을 쓰고 사회주의 정책을 오늘까지도 획책하는 것이 정치 현실이다. 


노무현대통령 정권은 386주사파의 사상을 수용하여 종북적 민족주의정책을 획책하여 북한의 대남구호인 “우리민족끼리”를 국가정책으로 수렴하는가 하면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것을 부시대통령에게 호소해 삭제하는 등 “북한 대변인”을 서슴지 않았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비서실에 386주사파들을 대거 발령하여 대한민국을 김정은의 대남침략전술을 지원하여 국제 언론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란 별명을 달아주기까지 했었다. 


특히 조국 정무수석-법무장관은 스탈린의 소련법연구자로서 공산주의 법제를 수입 집행하려고 기도했고, “대한민국 헌법 테두리 내에서 사회주의 정책으로 나라를 바꿀 것이다”고 호언장담했었다.


  1년 전 대선은 윤석열 대통령이 간발의 차로 이재명 586 주사파출신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된 것은 하늘이 자유민주주의를 살려준 기적이었다. 이는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함으로써 획득한 자유민주주의의 귀중한 승리였다. 


이렇듯 우리의 4.19혁명은 출생 후 단 한 번도 집권하지 못한 불행한 자유민주 혁명이었다. 미국의 프랑스대혁명 석학의 “1789, 프랑스 대혁명은 언제나 현실이다”는 명언은 우리에게 4.19혁명이 허공에 맴도는 꿈이 될 수 있음을 명백히 상기시키고 있다. 


2023년 4.19혁명일은 어느 때보다 잡음이 일었다. 일부 4.19세대를 희생자유족회 공동명의로 4월18일 동아일보에 5단 통단으로 “4.19혁명은 아직도 독재자 이승만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제목의 광고를 냈다. 


1) 4.19는 자유민주정의를 짓밟은 이승만 독재정권과의 싸움이었다. 

2) 4.19혁명을 자칭하는 몇몇 사람들이 이승만 묘소를 참배하고 4.19와 이승만의 통합참배라고 자화자찬했다. 

3) 4.19혁명 국가유공자는 단 한사람도 독재자 이승만을 용서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선포했다. 63년이 지났지만 김주열군을 비롯한 186명 희생자의 유족들과 6200명 부상자 동지들은 4.19혁명정신을 계승 선양하기 위해 계속 전진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했었다. 


그렇다! 자유를 외치는 학생들을 독재자 이승만을 지키기 위해 총을 발포하여 적을 사멸하듯 총살한 경찰과 군인들을 모두 용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 시민의 자유 민주 정의의 신념이며, 이는 바로 “4.19혁명이 언제나 현실이 되는 이유”이다.


  우리는 1960년 7.29총선에서 이승만 잔당들의 국회의원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서울대국민계몽대”를 창설하여 이승만 잔당들의 당선이 유력한 선거구에 10개 팀의 계몽부대를 파견했었다. 


나는 사회학과 신용하(현 서울대 사회학과 명에교수), 박종열(정치과)등 9명과 함께 경남 창령읍에 갔었다. 우리는 창령초등학교 교실에서 숙식하면서 2팀의 계몽부대를 편성하여 선거선도활동을 했다. 선거법에 저촉됨으로 우리는 후보를 지명할 수 없었다. 자유당 신모 후보가 “무조건 당선”될 것으로 현지 언론이 보도했고, 민주당의 박기정 후보가 뒤를 쫓고 있었다.


유권자들은 “제발 안 찍어야 할 기호번호만 말해달라고 우리에게 요청했지만 선거법 위반임으로 말 못하는 답답함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끝까지 “올바로 공명선거를 해달라”등으로 나팔을 불 수밖에 없었다. 


어떤 할머니는 “번호!번호!”하면서 매달리기도 했으나 결코 말할 수 없었다. 투표일 아침 우리는 창령읍 투표소 뒤쪽 관람석에 앉아 개표사항을 주시하고 있었다. 개표가 시작되었고, 자유당 신모 후보가 1등을 계속 달리는 것이었다. 많은 유권자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우리 계몽대편을 보고 있었다. “역시 자유당은 난공불낙이네” 누군가 중얼거렸다. 


오전 개표가 거의 끝날 때까지 자유당 후보는 당선을 향해 많은 격차를 보이며 1등을 달리고 있었다. 우리는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자유당 후보가 당선? 누군가 중얼거렸다. 유권자들이 우리의 눈치를 흘깃 살펴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유권자들이 달려가 투표함에 성냥불을 그어 종이에 불을 붙이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재빨리 개표소를 뛰어나와 신용하 황활원 빅종열 등과 숙의했다. “우리 때문인 것 같다. 큰일이야! 말릴 순간도 없었다. 서울대 계몽대는 현지 해산을 단행하고 신용하와 황활원은 부산, 나와 박종열은 대구로 나머지도 모두 개표소를 떠났다. 


이것이 유명한 ‘창령 투표함 방화사건’의 전말기다. 나는 대구의 이수정군(정치과 서울문리대 4.19선언문 ‘자유여!’ 작성자)을 만나 협의했으나 언론들은 창령선거구의 재투표를 결정한 사실을 알았고, 귀경한 후 2차투표에서 민주당 박기정 당선을 조용히 막걸리로 자축했었다. 


그러니까 창령 유권자들이 우리의 계몽노고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투표함에 불을 질렀다는 보도를 읽고, 저절로 자유를 위한 투쟁을 결심해 행동한 창령 선거구 유권자들에게 서울에서나마 필사적으로 자유당 후보의 당선을 막은 용기에 감탄하며 또 감사했었다.


그래서 서울대 계몽대는 곳곳의 자유당 잔당소탕을 위해 최후까지 투쟁한 사실을 63년 후 오늘 증언함으로서 거듭 창령 유권자의 용기에 감사하면서 이 소식은 하나의 4.19혁명증언으로 남긴다. 이것이 1960년 7월29일 창령투표함 방화사건의 진실이며, 다시 한번 유권자님들의 투철한 자유민주의식과 용기에 감동하고 있음을 밝힌다. 


이렇게 하여 4.19혁명은 윤보선대통령-장면총리의 민주당정권을 탄생함으로서 제1차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쟁취했던 것이다. 오늘 4.19혁명은 윤석열 대통령 정부를 3차 자유민주주의 정권교체를 한 것이니 어찌 “4.19혁명은 언제나 현실”이 아니겠는가!.  


오늘 윤석열 대통령정부가 4.19혁명의 자유민주주의 계승정권으로 종북주사파정권과 대립각을 세우고 등장했다면,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특별조치를 정책적으로 실시해야 마땅할 것이다.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국경일로 선포하고 파리의 중심가 샹젤리제 대로에서 대통령과 전 각료, 의회 요인들이 전원 출석한 가운데, 군사퍼레이드를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 이는 프랑스가 ‘자유민주주의수호’를 위한 군사적 축제로도 승격했다는 것이다. 


1789년 7월 14일 프랑스대혁명 기념일에 시작된 파리에서 군사행진축제는 오늘 세계의 최고 명장면을 연출하여 많은 나라들이 참여를 희망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실제 혁명 200주년 기념일에는 많은 나라들이 퍼레이드부대를 파견하여 명성을 높이기도 했었다. 그 때 필자는 4.19혁명의 자유민주주의 선양국가로 퍼레이드에 참가를 왜 하지 않았는지 외교의 빈곤을 개탄했었다.


이제 윤대통령 정부는 4.19 자유민주주의혁명 기념일을 단순히 수유리 4.19혁명묘지에서 기념사로 때우고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이다. 


첫째, 혁명기념일로써 국경일로 선포해야 할 것이다. 

둘째, 3부 요인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시민축제로서 광화문 광장에서 군사퍼레이드를 실시해야 할 것이다. 4.19혁명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군사행진이다. 

셋째, 이날을 자유민주주의 쟁취를 축하하는 특별 행사를 각 시도마다 실시하고 

넷째, 자유민주주의를 고양하는 연극 등 행사를 축제로 실시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의 고양과 일상적 현실화 조치를 위임받은 최초의 정권인 만큼 4.19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숙고하여 반드시 실행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4.19혁명은 일상적으로 4.19혁명이 “언제나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대통령이 자유를 외치며 주먹을 휘두를 것이 아니라 정책과 법으로 선포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렇게 함으로써, 프랑스대혁명 다음, 세계 제2의 자유민주주의 4.19혁명은 “언제나 현실”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주섭일, 419혁명공로자회 고문, Why times 고문, 전중앙일보 국제문제대기자-파리특파원,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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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학 박사
    전 중앙일보 파리특파원-국제문제대기자

    저서: 사회민주주의의 길(사회와 연대, 2008) 등
    프랑스의 나치협력자 청산 (사회와 연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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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의 3대 세습과 평양의 봄(사회와 연대, 2011)
    정치변화와 사회민주주의 (사회와 연대, 2002)
    김정일과 부시의 대타협(두리미디어, 2008)
    새정치와 이원적 민주주의 (사회와 연대, 2012)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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