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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2-23 06: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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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자주 오가는 길에 나이 많은 회화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1976년 보호수로 지정될 때 520살이었다니 어림잡아도 560살이 넘었다. 가지 끝에 물이 오르는 봄날부터 녹음이 우거진 여름, 그 길에서 가장 늦게 고목의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마른 가지만 남은 겨울에도 유심히 바라보며 내내 사진을 찍곤 했는데 며칠 전 나무 중간쯤에 그동안 보지 못 했던 귀 모양의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나무의 귀처럼 보였다. 비록 눈은 감고 있을지언정 한결같이 귀를 열고 있는 현자와같이, 육 세기 내내 이어진 도읍의 숨 가쁜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으며 LP판 같은 나이테에 꼼꼼히 아로새겼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귀 기울이는 나무를 시작으로 옛길에는 구석구석 보물찾기와 같은 단서가 숨어 있다. 수많은 발걸음이 수백 년 걷고 뛰고 달린 길이니 눈에 보이진 않아도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켜켜이 쌓여 있을까. 고종황제에게 커피를 전한 독일계 러시아 여인이 운영했던 손탁호텔 있던 자리에는 학교 건물이 들어섰고, 목조에 기와를 올린 교문 앞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서있다. 어른이든 아이든 말에서 내리라는 말이 새겨진 비석은 궁궐이나 사찰과 같이 신성한 장소의 출입구에 세웠다고 하니 배움터 역시 그만큼 신성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마비에서 돌담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담장 안으로 댕기머리를 한 여학생의 조각상이 뒷모습을 한 채 서있다. 가만히 서있는 것이 아니라 저고리 고름을 휘날리며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있는 자세다. 그녀가 바로 문정희 시인이 ‘풀꽃 하나가 쓰러지는 세상을 붙들 수 있다’고 노래한 ‘아우내의 새’, 유관순 열사다.


돌담 끝나는 지점에 보일 듯 말 듯 낮게 서있는 보구여관 터 표지석은 1887년부터 여성들도 교육뿐 아니라 의료혜택을 받게 되었다는 걸 말해준다. 그 뿐 아니라 그곳에서 의학훈련을 받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가 되어 병든 이들을 위해 헌신했던 박에스더(아명 김점동) 선생이 생각난다. 지난 가을, 제주도의 간호대학에서 강의하는 지인에게 표지석을 보여주고 함께 산책을 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보구여관이 최초의 여성병원이며 간호사양성소였다고 가르치는데 직접 오다니 영광이라며 기념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서울성곽길의 노른자인 정동길에는 역사적인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시립미술관과 정동극장의 옛모습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서울시립미술관 자리에는 1995년까지 대법원이 있었다. 학창시절 지름길로 학교에 오가느라 대법원 마당을 지나다 보면 수인들이 포승줄에 묶여서 재판정에 들어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차마 똑바로 쳐다보기 민망하고 안쓰러운 장면이었다. 사연 많고 유서 깊은 건축물에 미술관이 들어선 것은 참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1928년에 뾰죽탑 없이 고딕식으로 지어져 수려한 아치 모양의 현관이 특징인 건축물에 2002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이 들어서면서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시립미술관의 아담한 숲속 야외 조각전시장에는 배형경 조각가의 작품 ‘생각하다’가 여기저기 무심하게 흩어진 채 전시되어 있다. 이목구비도 희미하고 희로애락의 표정도 담기지 않은 청동 덩어리 인체는 묘하게도 인간의 모든 감정을 담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추모관이든 미술관이든 어느 장소에서나 잘 어울린다. 정동길 오거리 분수대 가운데 서있는 삼미신상 역시 배형경 작가의 작품이며 진선미, 즉 똑똑한 미술관, 착한 미술관, 아름다운 미술관을 상징한다.


미국대사관과 벽을 대고 있는 정동극장이 있는 자리에는 원래 1949년부터 서울우유에서 운영하는 밀크홀이 있었다. 묵직한 유리병에 담긴 고소한 우유나 작은 병에 담긴 초코우유와 빵을 팔았는데 학창시절에 종종 들러 한가롭고 맛있는 시간을 가졌던 추억이 있다.


정동극장 옆 골목에는 숨은 듯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붉은 벽돌의 중명전이 있다. 을사늑약의 현장으로 오랜 시간 수모를 겪었지만 원래는 경운궁(덕수궁)의 별채로 지어진 황실도서관이었고 고종황제가 집무를 보며 외교사절을 알현하던 서양식 궁전의 하나다. 나라든 개인이든 누구에게나 힘든 세월을 견뎌내야 하는 시기가 있다. 뼈아픈 회한과 수모를 견디지 못해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다시 회복의 기회가 찾아온다.


덕수궁 대한문에서 신문로까지 1km 가량의 길을 걸으며 회화나무와 같이 귀를 열고 세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수많이 이야기가 두런두런 말을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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