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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1-30 0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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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하고 가다 라디오에서 천주교 수사였다는 국수집 주인 이야기를 들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료로 국수를 대접하는 그의 가게 문밖에는 가끔 고기를 담은 비닐 봉지가 놓여 있거나 달걀 몇 판 또는 국수 얼마큼씩이 놓여 있단다. 그렇게라도 조금씩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이란다. 심지어는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먹어야 한다며 그곳을 피해 저 먼 곳으로 점심을 얻어먹으러 가는 할머니도 있단다. 돕는다는 것, 나눈다는 것은 베푼다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받는 것이더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서 세상은 그래서 이만큼이라도 살만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새해가 되어서인지 여기저기서 아름답고 행복하게 해주는 말들이 영상과 함께 메일로 배달되어 왔다. 그 중 삶의 기도 중에서라며 보내진 기도문은 내 가슴을 참으로 따스하게 해주었다. 특히 마음을 가난하게 하여 눈물이 많게 하시고, 생각을 빛나게 하여 웃음이 많게 하소서하는 부분과 용기를 주시되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드러내는 용기를 주시고 용서와 화해를 미루지 않는 용기를 주소서와 건강을 주시되 그러나 내 삶과 생각이 건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소서하는 부분은 마음 깊숙이까지 전해져 왔다. 그러면서 언제 어디서나 사랑만큼 쉬운 길이 없고 사랑만큼 아름다운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늘 그 길을 택하게 하소서하는 시인의 기도를 통해 내 삶의 방향성을 점검했다. 이러한 기도는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아름답게 해주는 기도가 될 것 같다. 나를 보다 나답게 하되 사랑받는 나로 만들어주는 겸손과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줄 것이었다.


그러나 내 삶을 돌아보면 알면서도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던 날들이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다가올 살아갈 날들도 그렇게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몰라서 못 하는 것은 죄라 할 수 없겠지만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은 분명 죄일 텐데 말이다. 아까 라디오에서 들었던 국수집 주인처럼 소신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은 그래서 특별해 보이기까지 한다. 내가 못 하는 것을 과감하게 실천에 옮기고 그를 통해 삶의 기쁨과 보람을 얻는 그는 분명 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사람이다. 나라고 그런 생활철학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실천력과 결단력이 부족하고 그보다도 내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내려놓지 못함의 차이일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흑인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가 자신의 인생철학을 네 가지로 요약한 것을 보았다. 첫째,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라고 했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라는 것이다.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픔을 겪는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셋째, 남보다 설레는 꿈이 있다는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요, 넷째, 남보다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도 사명이라는 것이다.


사명과 책임은 다르다. 사명은 그가 해야 할 일 자체이고, 책임은 그 일을 해야 할 의무나 임무이지만 그 결과까지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책임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도덕적 윤리적 강제가 될 수 있지만 사명은 즐거움으로 나가는 것일 수 있다. 의무감보다는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으로서의 가치가 사명이 아닐까 싶다. 현대에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을 주지 않음이 아닐까.


어떤 건축가가 나이가 들어 평생 일해오던 직장을 나올 때가 되었는데 고용주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좋은 집 한 채만 지어 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평생 열심히 일했는데 마지막까지 일을 시키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그는 서운한 마음으로 설계도 적당히 하고, 질 낮은 재료와 값싼 일꾼들을 고용하여 일을 시켰단다. 그의 마음은 이미 회사를 떠나 있어서 공사 감독도 소홀했고 그래서 마무리도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집이 완공되었다. 그런데 고용주는 그에게 집 열쇠를 건네며 그동안 나를 위해 수고해준 선물로 이 열쇠를 준비했소. 이 집은 이제 당신 것이요. 이게 내가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오.” 했단다. 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을 가슴 치며 후회했다. 사명은 나를 아름답게 할 수 있지만 책임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내게 주어진 것들이 바로 누군가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 평범한 진리도 깨닫지 못하고 사는 내가 부끄럽고 한심하단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면 사명을 아름답게 감당해 내는 것이 책임일 테니 책임감은 나를 아름답게 하는 사명을 이루어 내는 또 하나의 힘이 될 것 같다. 최선보다 더한 정성으로 오늘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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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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