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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2-20 07: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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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원 한탄강 [사진=철원군청]


오래전 한 문학잡지에서 김주영 작가의 쇠둘레를 찾아서라는 단편소설을 읽었다. 자세한 내용은 희미해졌지만, 화자가 쇠둘레란 지명의 고을을 찾아갔으나 막상 가보니까 아무리 찾아도 현실 속에 그런 곳이 없더라는 이야기다. 그 설정이 인상적이어서 종종 그곳이 어딘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얼마 전에 강물을 따라 절경의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잔도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잔도라면 중국의 장가계에서 벼랑 사이에 아찔하게 놓인 다리를 긴장하며 건넜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곳이 있다니 궁금증이 커졌다.


쇠둘레는 삼국시대부터 썼던 지명 철원(鐵圓)’을 우리말로 풀어 쓴 말이며 고려 말에 철원(鐵原)’으로 한자 지명이 바뀌었다. 어떤 지명이든 쇠 철()자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그 땅이 쇠를 비롯한 광물과 관련이 있겠다 싶었는데 그곳이 바로 용암이 분출되어 켜켜이 층을 이룬 지질학의 보고였다. 크고 작은 폭포와 용암대지가 펼쳐진 철원평야, 그 사이를 깊이 파고든 한탄강이 흐르는 지역이 2020년에 유네스코가 인증하는 세계지질공원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소설을 쓴 김주영 작가는 과거 남북한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철원지역이 38선 이북과 휴전선 이남으로 이러 저리 속하며 사람들이 떠나고 폐허가 되어버린 풍경을 보며 탄식했을 것이다. 그때 그 상황을 증명이라도 하듯 철원역사문화공원 길 건너편에는 여전히 뼈대만 남은 노동당사가 을씨년스럽게 서있다. 포화가 쏟아지고 하루아침에 주권이 뒤바뀌는 난리 통에 쇠둘레인들 남아날 수가 있었겠는가


노동당사 앞에 조성된 역사문화공원에는 분단 전 철원역과 우체국, 학교, 양장점, 사진관, 식당, 극장, 소방시설을 재현해놓았다. 1930년대만 해도 철원역은 역장을 포함하여 약 8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대규모의 역이었고 금강산으로 가는 사람들이 연 28만 명씩 모여들어 역 근처에 여관이 100여 곳이나 있었다고 한다. 삼국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과 물량이 오고가는 교통의 요충지 철원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한동안 유령도시 같이 적막하고 황량한 고장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역사보다 깊은 땅의 역사는 백년, 천년이 아니라 수 만 년, 수 백 년, 수 천만 년을 두고 흔적을 남긴다. 철원은 땅에 묻히고 새겨진 지구의 속상과 나이테를 드물게 볼 수 있는 곳이다, 11천만 년 전에 형성된 화강암이 현무암 속에 묻혀 있다가 강물에 씻겨 솟아난 고석(고석정), 중생대의 백악기의 화강암이 드러나며 물길이 바뀐 삼부연 폭포, 한탄강 깊은 계곡을 메우며 흘렀던 용암이 두꺼운 층을 이루고 강물에 침식되면서 만들어낸 주상절리를 바라보며 걷고 멈추어 서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한탄강 길 3.6km 잔도를 걷는 동안 11월 중순까지 남아있는 단풍이 강물에 흘러가며 움직이는 그림을 만들고 강 절벽의 입체 작품과 조화를 이루었다.


지인이 자기 고향이 철원인데 인생 후반기에는 고향에 들어가서 농사짓고 강에서 물고기 잡으며 살겠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을 때만 해도 막연히 심심하겠다 생각했는데 그 곳은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할 만큼 값진 보물을 품고 있는 땅이라는 걸 알았다. 여전히 읍내는 인적 없이 한산하고 군사분계선 근처 옛 마을은 시국에 따라 사람들이 몰려왔다 발길을 끊기도 하지만 헤아릴 수없이 긴 시간이 축적된 지질 공원은 언제든 가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어머니께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에 다녀왔다고 하니까 육이오 전쟁 전에 고모 두 분이 그곳에 살았는데 꼭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바로 며칠 후에 동생이 차로 모시고 갔다. 비록 한탄강 길을 걷지는 못해도 차로 역사문화공원, 삼부연 폭포, 백마고지 전적지를 돌아보셨다. 물론 그 때의 철원은 흔적도 없지만 짧은 추억여행이 1932년 생 어머니 마음에 유년의 고까옷을 입혀드렸다


큰 추위가 오기 전에 많이 걷는 길은 휠체어를 타고 어머니의 하루여행은 계속되고 있다. 어릴 때 살던 동네인 광화문 일대, 정동길, 덕수궁, 경복궁, 인사동, 행촌동의 홍난파 가옥과 앨버트딜쿠샤 가옥, 근대사의 자료가 남아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모시고 다녔다.


추억 어린 장소에 가면 가슴 속에 가라앉아 있던 화강암이 솟아오르기도 하고,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현무암이 내비치기도 한다. 때로는 젊은 시절 빛나던 장면이 폭포 위 무지개처럼 피어나기도 하고, 수많은 젊은이가 피를 뿌린 고지에 올라 빨간 우산 속에서 가랑비를 피하며 묵념을 하기도 한다. 전쟁으로 인해 사라졌던 고을이 지질공원으로 다시 돌아온 것처럼 날마다 전쟁을 치르며 지하로 파고드는 우리네 삶도 조금씩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마다 고유한 모양의 주상절리가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철원에 다녀오며 어렴풋이 쇠둘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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