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2-11-26 21:49:39
기사수정



안녕하세요?

마음한잔, 나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오늘은 무기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산뜻하신가요?

오늘 할 일로 마음이 설레시나요?


아침에 일어나도 기분이 개운치 않고, 뭘 하고 싶은 의욕도 없으시다고요?


저도 오랫동안 그런 시간을 보낸 적이 있기에 그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지속적으로 자신이 무기력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스스로 뭔가 하려고 하지 않고, 매사 부정적이며, 쉽게 피로해 하고, 사람 만나기를 꺼리며, 마음이 조급하고 별거 아닌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곤 한다는 것이지요.


무기력증에 갇히면 입맛이 없거나 오히려 폭식을 하게 되고, 자기안에 갇혀 활동을 하지 않아 건강에도 안 좋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혹시 본인이 일중독이나 일강박증은 아니신가요?

이런 경우는 번아웃증후군이라고 해서 몸과 마음 모두 과부하가 걸려 몸도 힘들고, “도대체 내가 지금 뭐 하고 사는 거야. 이게 사는 거야” 라는 생각에 삶에 회의가 오고, 자기혐오도 뒤따르며, 마음도 힘들어져, 일도 뭐도 다 싫어지곤 하지요.

그렇다면, 일단 몸도 마음도 쉬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난 영상 ‘계영배’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자신의 삶의 70%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쏟을지언정, 나머지 30%는 진정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여백처럼 남겨두세요.

삶에서 활력을 잃으면 ‘계영배’에서처럼 그 70%도 모두 잃게 될 수 있음을 잊지 마세요.


번아웃도 아닌데 의욕도 없고, 꼼짝도 하기 싫고 등등, 무기력한 증세가 나타나신다고요?


몸과 마음은 같이 가는 거라, 마음이 무거우면 몸도 천근만근이 됩니다.

‘에라. 잠이나 자자’

그러다 보니, 몸은 더 무거워지고 따라서 마음도 더 무거워지고, 다시 몸이 더 무거워지고. 이렇게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자, 벗어나자 아무리 각오해봐야 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과 몸 사이의 무기력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어느 책에선가 이런 글을 본 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신께 기도했습니다.

새벽기도부터 자기 전까지 종일토록 기도했습니다.

“신이시여! 제가 이렇게 지성으로 기도드리니 제발 큰돈을 벌어 보란 듯이 살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기도를 해도 돈은 전혀 들어올 기미가 없는 겁니다.

그는 신에게 따져 묻습니다.

“신이시여, 제가 매일 종일토록 기도했건만 어찌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신이 답합니다.

“너! 나가서 구걸이라도 해봤어?”


바로 이거지요.

나의 상황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 합니다.

마음만으로는 밭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다스리기 어려우니, 우선,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구걸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나가서 뜀박질이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무기력의 에너지장에서 벗어나 활력의 에너지장으로 옮겨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단순합니다.

지금 입꼬리를 살짝 올려보세요.

입꼬리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눈도 조금 커지고 밝아지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기분도 좀 업되지 않나요

이번엔 입꼬리를 조금 내려보세요.

입꼬리만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눈도 내리 깔려지고 기분도 좀 다운되지 않나요.


우리가 하려고만 하면 자그마한 행동으로도 우리의 현재 기분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우울감을 즐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장 일어나 집안청소라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있는 힘껏 100미터 달리기라도 해보면 어떨까요.

나가서 눈부신 태양과 만나세요.

슬그머니 자신감이 생기실 겁니다. 적어도 기분은 달라질 겁니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팔굽혀펴기가 되었든, 빠른 걸음 걷기가 되었든, 뜀박질이 되었든 자신이 하려고만 하면 쉽게 해낼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작은 성취를 맛보게 될 겁니다.

작은 성취들을 모아보세요.


그러나 기분이 좀 나아지고 약간 의욕이 생긴다고, 하루 24시간을 다 통제하려고 욕심을 부리지도 마세요.

그런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데 쉽게 될 리가 없습니다.

안되면 또 좌절이 옵니다.


그러니 그러지 말고 하루 중 자신이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것 하나를 정해 다른 것은 못 해도, 이거 하나만은 꼭 한다고 결심해 보세요.

저 같은 경우에는, 사법고시 준비를 하면서 슬럼프를 겪을 때, ‘무조건 아침에 일어나 1시간은 뜀박질을 한다.’고 정하고, 공부는 안 해도 아침에 일어나면 1시간 뜀박질은 했습니다.

슬럼프를 겪거나 무기력에 빠졌을 때, 하루 24시간은 감당하기에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러니 24시간과 싸우지 마시고 자신에게 제일 만만한 것으로 정해 30분 또는 1시간을 지켜내 보세요.

그러면 희한하게도 서서히 나머지 23시간도 잡혀갑니다.

그 짧은 30분, 1시간이 여러분을 서서히 무기력의 에너지장에서 활력의 에너지장으로 옮겨놓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이것입니다.


몸을 움직이면서 이제 마음을 한번 챙겨보세요.


주변을 돌아보면 온통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뿐이지요?.

무슨 말은 그리도 잘하며,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못하는 게 없지요?

또 아는 건 무에 그리 많은지.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자신만 늘 그 자리에 멈추어 선 듯하고, 이제 그들을 따라가기만도 엄두가 나지 않지요?

거기다 가진 것은 얼마나 많은지?

도무지 그동안 나는 뭐 하고 살았나 싶지요?


이렇게 느끼신다면,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신 겁니다.

자존감이 떨어져도 무기력해집니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데 활력이 있을 리 없지요.

불가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화엄세계’라고 합니다.

갖가지 꽃으로 장엄한 세계라는 의미이지요.

그 꽃에는 장미도 있고, 개나리도 있고, 진달래도 있고, 히아신스도 있고, 수선화도 있고, 튤립도 있고, 제비꽃도 있고, 할미꽃도 있습니다.

이름 모를 들풀도 있습니다.

모든 꽃들이 자신만의 모습과 자태와 향기로 이 세상을 장식하고 있지요.

할미꽃이 장미의 아름다움을 시샘하지 않고, 들풀이 튤립의 우아함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그 존재 자체가 존재의 이유이며 목적이지요.


장미가 아름답다, 튤립이 우아하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입니다.

길가에 피어 있는 들풀을 잘 봐보세요. 그 자체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지. 장미만이 아름답고 튤립만이 우아한 것이 아니랍니다.

우리가 몸을 가까이 하여 마음을 주면 아름다움이 보이고 우아함이 드러납니다.


자신은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데, 자신을 가까이하여 자신에게 마음을 주어 본 일이 있나요?

자신이 자신이 아니고자 하면, 자기 자신도 못되고 남도 못됩니다.

남만 보지 말고, 한번 자신을 살포시 따뜻하게 들여다보세요.

우리는 모두 꽃이랍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달란트를 찾아보세요.


한편, 자신이 작다고 느껴지면, 다른 이가 커 보이는 것이 짜증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한번 생각을 돌려 그의 그 잘남을 인정해줘 보세요.

우리는 다른 이의 잘난 모습에 짜증날 때, 속으로 빈정거리듯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니똥 굵다.”

속이 편하신가요?


이번엔 상대를 인정하며 말해보세요.

“니똥 참 굵고 색도 샛노라니 건강하네. 멋지다. 야.”

기분이 어떠신가요.


똑같은 말인데 후자로 말하는 것이 더 기분이 좋아지지 않나요.


이게, 인정의 마력입니다.

다른 이의 장점을 인정하고 나면 우선 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래. 니똥 굵다”고 빈정대는 속에서는 내 기분도 안 좋아지고 상대의 장점도 읽어내지 못합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춥니다.

어느 길을 택하시겠어요?


우리의 삶을 굳이 평가한다면, 평가할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음을 잊지 마세요.

우리의 삶을 다른 이에게 평가받고자 할 때 우리는 졸지에 ‘을’이 됩니다.

내 떡 내가 먹고 니 떡 니가 먹는데, 우리가 남의 평가에 굶주리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남의 평가에 일희일비 하면,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이 아니라 내가 남에게 예속되는 삶이 됩니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남에게 넘기지 마세요.

‘갑’으로 사세요.


뭔가 일을 추진하고 계신가요?

그저 묵묵히 하세요.

성과가 안나온다고요?

그저 묵묵히 하세요.

마음이 조급해지면 ‘그저 할뿐‘이라고 되뇌이세요.

설익은 밥을 먹을 수는 없잖아요.


우리는 뭔가 생각만큼 결과가 안 나오면 조급해하며, “내가 뭘 하겠어. 나는 뭘 해도 안돼”하며 부정적인 생각으로 접어들고 결국 자포자기해 의욕을 잃고 방황하곤 하지요. 일을 추진하면서 너무 성취에 조급해하는 것도 오히려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업가의 사업이 되었든, 학생의 공부가 되었든, 연주가의 연주가 되었든, 배우의 연기가 되었든, 그 발전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매일매일의 노력이 우상향하는 곡선처럼 결실로서 보여진다면, 세상에 성공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노력하니 어제보다 나아졌네. 하고 당장 느낄 수 있으면, 그건 노력이 아니라 오락인 거지요.

그러나 불행히도 노력의 결실은 매일매일 우상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답답할 정도로 더디게 나타납니다.

그렇기에 노력이 힘쓸 노, 힘 력, 노력이 되는 것입니다.


즉, 노력과 결실은 우상향 관계가 아니라 계단처럼 단층적이라는 것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노력을 해도 해도 아무 변동이 없습니다. 그러다 그것이 어느 임계치에 이르면 한 계단 점프하듯이, 도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밥이 뜸이 드는데, 솥뚜껑을 들썩거려서야 밥이 될 리 없지요.

매일매일의 쌓임. 그 쌓임은 어느날 신비와 기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를 종합해보지요.

우물에서 당장 물을 길어 올리려면 마중물이 필요합니다.

지금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마중물은 일단 몸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남을 인정하고 내가 가진 것을 찾아보세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살아있는 것이 만든 것입니다.

살아있음은 무한 가능성 자체입니다.


어차피 모든 경우의 수를 다 헤아려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을 냉정히 돌아봐 경거망동 하는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면, 시작하고 계속 그 다음을 창조해나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시작하면, 현실은 길을 내줍니다.

우리가 시작하면, 현실은 우리에게 창조력을 제공합니다.

시작하면 생각이 모이고 생각이 모이면 길을 찾게 됩니다.


시작하였으면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그저 묵묵히 나아가세요.

자동차 헤드라이트는 전방 50m만 비추어도 미국 동부 뉴욕에서 서부 로스엔젤리스까지 4,000km를 아무 문제 없이 찾아갑니다.

우리는 징검다리를 다 두드려보고 건너지 않습니다.

내 바로 앞에 놓인 징검다리, 다시 그 앞의 징검다리, 다시 그 앞의 징검다리.

우리는 어느새 개울을 건너와 있습니다.


실패도 할 것입니다.

실패는 우리가 평범하기에 피할 수 없고, 시작한 적이 없었기에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작의 인을 심고 실패하다 보면, 그 실패에서 얻은 경험은 어느날 우리가 다시 심은 시작의 인에 연으로 다가와 성공의 꽃을 피울 것입니다.

이것이 인연법칙입니다.


우리가 무기력에서 다시 활력을 되찾아 지금 여기, 이 순간의 삶에 존재하기를 바랍니다.


어느새 가을이 성큼 우리 곁에 와 있네요.

이제 나가볼까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마음한잔, 나로부터의 자유였습니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hytimes.kr/news/view.php?idx=1354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기구독
교육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