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2-11-05 06:35:57
  • 수정 2022-11-05 07:55:23
기사수정



대한제국 시기를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 나왔다. 한국의 역대 왕조는 대부분 5백년 이상 유지되었다. 신라는 천년 왕국이라고 하고, 고구려, 백제 모두 6백년 이상 지속되었다. 그런가 하면 고려와 조선 모두 500년 내외 유지되었다. 이웃 중국의 왕조에 비하면 평균 2배 내지 3배에 가깝다. 왕조 교체가 잦았던 유럽이나 서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비하여도 장기 지속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사상에는 매우 단기간 존재한 나라도 있다. 대한제국이 그것이다.


1897년 고종의 황제즉위와 대한의 선포로 출범한 대한제국은 러일전쟁의 격동 속에 시련을 거듭하다 1910년 일본에게 국권을 잃었다. 그래서인지 흔히 ‘그런 나라가 있었나’라거나 ‘대한제국이 무슨 나라냐’, ‘일본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니냐’는 등의 질문을 접하였다. 오랜 동안 한국의 중·고등학교 역사부도에서 누락되어 있었고, 박물관에 표시된 역대 왕조 계보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한편 한국근대사의 서술에서 대한제국은 독립협회를 서술하는 가운데 부속 항목처롬 들어가 있기도 하였다. 가령 <독립협회와 대한제국>과 같은 소제목이 그것이다. 역사 속의 한 나라가 사회단체의 부속 항목처럼 비쳐지고 있었다. 독립협회가 선각적 사회단체로서 한국근대사에 기여한 점은 많지만, 그렇다고 나라와 대등하게 편제된 것은 분명 균형이 안 맞는 일이다. 이처럼 대한제국이 소홀히 취급된 데에는 사정이 있었다.


첫째, 대한제국이 몇백 년 지속된 것도 아니고, 조선왕국이 존재했던 그 땅에 그 군주·관료·백성이 구성원이었으니 언뜻 조선왕국과 경계가 모호하고 게다가 수난으로 점철된 역사에 불과 13년 만에 국권까지 잃었으니 이해보다는 비난의 정서가 컸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 시기를 이조말(李朝末), 조선말(朝鮮末) 혹은 한말(韓末), 구한말(舊韓末), 구한국(舊韓國) 등으로 칭하거나 ‘조선말의 대한제국’이라고도 하였다. 심지어는 한국의 역사부도·역사연표 등에서는 사라진 경우가 많았다. 가령 ‘고조선 →삼국 →통일신라·발해 →고려 →조선 →일제하 →(미군정) →대한민국’ 혹은 ‘고조선 →삼국 →통일신라·발해 →고려 → 조선→일제하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민국’의 형태를 취한 것이 그것이다. 미군정은 국가가 아니고,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제사회로부터 승인받지 못했으나 역사부도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사 속에 존재했고, 세계 각국의 승인과 함께 공식 외교관계가 이어졌던 2천만 인구의 나라를 누락시킨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 한국 근대사가 혼란기이고 보니 위정척사, 개화, 동학, 의병, 독립 등 주로 사회운동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본 결과이다. 이 모두 중요한 역사 연구의 대상이지만, 운동사에 치중하다보니 국정 운영 주체인 정부의 입장은 도외시 되거나 비난 일변도로 흘러간 면이 있다. 그 결과 동서양 각국을 상대하던 정부의 정책이나 구상, 나아가 국가 기간 조직의 순기능이나 역할 등을 제대로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셋째, 일본의 책략에도 기인한다. 일본은 대한제국의 주권을 탈취하면서 대한의 국호를 지우고 조선이란 지명을 사용하게 하였다. 이를 위해 일본 외무성과 서울 현지의 통감부 사이에 오고간 전문만 수백 통에 달한다. 그래서 일제하에는 제국의 식민지로서 조선이란 이름이 유행하였고, 대한이란 이름은 주로 해외의 독립운동 단체에서나 등장하는 낯선 이름이 되었다. 거기에 북한은 ‘조선’을 국호로 선택했고, 일본에서는 그 시대를 흔히 조선으로 통칭하고 있는 점도 부지불식간에 ‘대한’을 소외시킨 한 요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한제국을 배제할 경우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는가. 대한제국은 동서양 각국이 인정하고 승인한 나라였고, 공식 외교관계도 대한제국 황제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독도에 관해 발효한 황제의 칙령, 간도관리사의 파견 등은 어떻게 볼 것이며, 대한제국과 각국의 외교관계와 만국우편연합, 만국적십자사 등 국제기구 가입은 어떻게 처리되는가. 그리고 일본의 대한제국 병탄이나 식민통치에 대한 역사적 책임 등은 대한제국을 배제하면서 무슨 승계 자격이 있어 이를 추궁한다는 것인가.


국력이 빈약했고 군주와 관료의 역할이 무능했더라도 그것과는 별개로 대한제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존재와 역할이 부인되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격이 된다. 나아가 거기에 뒤따르는 문제도 생각을 거듭할수록 너무도 많음을 알게 된다.


가까운 중국의 예로 왕망(王莽)이 세운 신(新, 8~23) 나라는 16년, 양견(楊堅)이 세운 수(隨, 589~618) 나라는 30년 지속되었다. 심지어 5대 10국 분열시대 후량(後粱),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등은 불과 10년 내외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나라도 중국 왕조의 계도(系圖)에 누락되지 않고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필자가 대한제국에 관심을 가진 배경에는 이상의 이유도 있다. 그동안 관련 논문을 쓰면서 나라도 아닌 나라에 관심을 갖는다거나 고종을 변호하는 것 아니냐는 등 비난도 많았다. 그러나 자학적 역사관은 벗어던질 필요가 있다. 돌이켜 보면, 지난 1세기 여의 혹독한 시련이 없었다면 한국인들이 이렇게 분발하여 기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개인이나 국가 모두 극단적 곤경에 처하면 자포자기하기도 하고, 용기백배하여 우뚝 일어서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는 후자의 대표적 사례이다. 19세기 말로부터 현재까지 명멸한 시대의 선각자, 국가 리더는 물론 모든 성실한 한국인들이 이런 기적의 주인공이다.


이것이 이 책이 보여주고자 하는 핵심이다. 저자 이민원은 동아역사연구소 소장으로 한국의 근현대사의 인물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전체 414쪽 분량으로 도서출판 선인에서 출간되었으며 값은 35,000원이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hytimes.kr/news/view.php?idx=1336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기구독
교육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