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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푸틴의 덫에 빠진 독일 -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로 곤경에 빠진 독일 - 러시아와의 경협이 평화라던 독일, 무리한 탈원전 시행 - 공산주의와의 경제협력이 평화를 가져다 준다는 잘못된 믿음
  • 기사등록 2022-06-30 14:32:22
  • 수정 2022-06-30 16: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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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로 곤경에 빠진 독일]


유럽 최대 경제 강국인 독일이 러시아가 휘두르는 에너지 무기화로 인해 곤경에 빠졌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부장관은 6월 24일(현지시간) “독일은 가스 부족 사태를 향해 가고 있다”면서 “가스 부족이 겨울철까지 이어지면 일부 산업은 '셧다운'(운영 중단)을 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베크 부총리는 그러면서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국가를 분열시키려는 책략”이라며 “자유민주주의를 내부에서부터 훼손하려는 푸틴의 계획이 실행되도록 놔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가스네트워크 등을 관리하는 클라우스 뮐러 연방네트워크청장도 같은 날 독일 ARD방송에 출연해 “2배 내지 3배로 뛴 가스값 고지서를 받을 수 있다”며 에너지 가격의 대폭 상승을 경고했다.


독일이 유독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로 인해 치명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은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구심점인 독일을 흔들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약화하고 유럽의 대러시아 공동전선을 흔들기 위한 러시아의 책략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천연가스의 55%, 석탄의 52%, 석유의 34%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전체 에너지원 중 약 25%가 러시아산이다.


▲ 독일 주간 슈피겔은 지난 6월 26일(현지 시각)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천연가스 악마’로 묘사한 커버스토리를 통해 독일이 왜 이렇게 러시아로 인해 곤경을 겪게 되었는지 분석했다.


[러시아와의 경협이 평화라던 독일]


독일이 이렇게 러시아 에너지로 인해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지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지난 6월 26일(현지 시각)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천연가스 악마’로 묘사한 커버스토리를 통해 독일이 왜 이렇게 러시아로 인해 곤경을 겪게 되었는지 분석했다. 슈피겔은 한마디로 독일이 러시아 천연가스에 중독(中毒)되어 있는 상태라고 정리했다.


“정치권은 경제 협력을 통한 대(對)러 관계 개선이 ‘평화’로 이어진다는 단꿈에 빠졌다. 강경파 환경론자들의 압력에 원전의 위험성은 과대평가하고, 러시아산 에너지 종속의 위험성은 무시했다. 독일은 그렇게 푸틴의 덫에 빠졌다.”


슈피겔의 이러한 지적은 지금 독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지난 50여년간 독일의 정치권과 정부, 그리고 기업들이 잘못된 신념과 지나치게 나이브한 안보의식, 그리고 이상만을 쫓은 탓에 결국 지금의 ‘치명적 상황’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1) ‘신재생에너지 강국’ 정책의 허구


독일은 자타가 공인하는 ‘신재생에너지 강국’의 대명사다. 그런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신재생 에너지 강국’이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을 한 것에 불과하다.


이를 위해 독일은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 여론에 휩쓸려 원전 폐기를 선언하면서 성급한 탈원전 정책을 시행했다. 또 급진적 친환경 에너지 전환 목표를 채택해 놓고 석탄발전도 급격하게 줄이면서 풍력, 태양력 등 재생에너지 비율을 전체 전력의 40% 가까이 높여 왔다.


그러나 ‘마스터플랜’도 없이 무턱대고 시행한 신재생에너지로는 원자력발전 중단으로 인한 공백을 메꾸지 못했다. 그래서 독일은 부족한 전력 생산의 공백을 러시아 에너지로 메꿨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을 수식해온 ‘신재생에너지 강국’이라는 용어는 사실상 ‘러시아 에너지 중독’이라는 치명적 결함 위에 세워진 허망한 명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푸틴의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들고 나오자 독일은 당장 에너지 빈곤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2) 잘못된 이념에 치우친 러시아정책


독일은 경제협력을 통해 공산 독재국가와 신뢰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동독출신이기도 한 메르켈 전 총리의 경우 러시아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사실 독일이 이렇게 러시아와의 친분관계를 두텁게 만들기 시작한 것은 사민당(SPD) 빌리 브란트 총리가 1969년부터 펼친 ‘동방 정책(Ostpolitik)’으로부터 기인된다.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정부는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소련과의 경제 교류를 통해 긴장을 완화한다는 동방정책을 추진했다.


후임인 헬무트 슈미트 총리도 “무역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총을 쏘지 않는다”며 에너지 수입을 늘렸다.


그리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뒤이어 소련이 붕괴하자 독일 정치인들은 “상호의존 전략이 철의 장막을 걷어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는 독일 정치인들의 착각이었다. 소련 붕괴의 실질적 원인은 석유였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은 원유 판매가 전체 수출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이었는데, 미국이 이 약점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서방 국가들과 연대해 소련산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대폭 줄이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을 부추겨 대대적인 석유 증산에 나서게 했다. 이로 인해 1985년 배럴당 28달러였던 국제유가는 6개월 새 3분의 1로 폭락했다. 석유를 판 돈으로 연방국을 지원하고 해외 전쟁을 감당하던 소련은 이때 입은 치명상에서 회복하지 못했고 결국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독일은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독일이 러시아 에너지에 중독된 것은 바로 그 이후였다. 독일은 러시아와의 경협사업의 일환으로 시베리아 천연가스 개발을 시작됐다. 독일이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면, 러시아가 가스로 갚는 방식이었다. 이러다보니 독일에는 아주 값싼 러시아 에너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3) 값싼 러시아 에너지에 중독된 기업들


독일의 철강·화학 대기업들과 대형 금융기관들은 이를 달콤한 비즈니스 기회로 적극 활용했다. 심지어 1970년대 석유 파동을 겪으면서 독일 좌파 정치권은 “중동보다 러시아가 훨씬 믿을 만하다”는 인식까지 갖게 됐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이 본격화했다.


이에 대해 슈피겔은 “1991년 독일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이미 33%에 달했다”며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정권이 위험보다 기회만 봤다”고 평가했다.


슈피겔은 또한 “값싼 천연가스가 흘러넘치자 정부는 섣부른 에너지 시장 자유화에 나서 ‘안정적 에너지 공급’이라는 정부의 정책적 역할을 방기(放棄)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에너지가 워낙 싸다보니까 독일 산업과 에너지 인프라가 자생력(自生力)을 키우는 쪽에는 전혀 관심도 갖지 않은 것이다. 그러는 사이 독일의 에너지 산업 기반은 점차 붕괴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고도 귀담아 듣지 않았던 독일]


그런 독일에게 러시아 에너지 의존 상태를 바로잡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푸틴이 2008년 조지아 침공,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름반도와 돈바스 지역 병합 등 야욕을 드러냈지만 독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독일은 오히려 더 많은 천연가스를 더 싸게 들여오는 ‘노르트스트림’ 사업도 시작됐다. 권위주의 국가를 변화시킨다는 자기만족, 탈탄소 선도국이 되겠다는 포부, 값싼 천연가스라는 눈앞의 달콤함에 현혹돼 안보 위기를 직시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슈피겔은 “노르트스트림은 처음부터 푸틴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것이고, 그의 측근이 장악해 온 사업”이라며 푸틴 대통령이 노르트스트림을 처음부터 독일을 겨냥한 ‘지정학적 무기’로 기획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이 바로 이 점을 독일에 누차 강조했던 것이다. 지난해 노르트스트림2 완공을 앞두고 당시 메르켈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여 이 문제를 꺼냈을 때, 조 바이든 대통령은 노르트스트림2의 개통을 한사코 만류했다. “푸틴의 에너지 무기화에 칼을 쥐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천연가스 수입원을 다양화하라”‘고 경고와 함께 조언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메르켈은 자신만만해 했다. 러시아는 이미 독일의 경제와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결코 독일에 반하는 정치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바이든을 설득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이든도 어쩔 수 없이 승인해 주고 말았다.


미국뿐 아니다. 동구권에서도 “러시아가 천연가스와 석유로 유럽을 분열시키려 할 것”이란 경고가 나왔지만 독일은 이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만큼 푸틴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것이다.


슈피겔은 이에 대해 “그 배경엔 러시아 가스는 어떤 정치적 여파에도 상관없이 계속 공급될 것이며, 독일은 절대 러시아 가스에 의존적이지 않다는 잘못된 믿음이 있었다”며 “푸틴이 이를 악용할 것이란 자명한 사실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제서야 잘못 깨달은 독일]


러시아는 최근 독일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량을 기존의 40% 수준으로 줄였다. 러시아는 “설비 문제”라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대러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참여한 것에 대한 보복이란 것이 중론이다.


비상이 걸린 독일은 가장 더러운 에너지인 석탄 발전소를 재가동하며 과거로 퇴행하고 있다. 원전을 되살리기에는 너무나도 먼길을 지나쳐 버렸다. 그러다보니 러시아가 가스관을 완전히 잠그면 발전, 난방은 물론 화학 기업의 원료 공급도 큰 타격을 받으면서 제조업 중심인 독일의 경제성장률은 5%포인트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슈피겔은 “러시아는 믿을 만한 파트너이고, 정치와 경제는 별개라는 주장은 ‘세기의 거짓말(Lebenslüge)’이었다”며 “독일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청구서가 지금 날아들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설익은 이상주의가 에너지 정책을 좌우하면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 지금 독일을 통해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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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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