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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6-21 22:36:46
  • 수정 2022-10-09 1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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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코코쿠넬 블로그]


할아버지, 나 잘 타지?” “하지, - 응 응?”


오늘도 두 녀석을 응대하기가 참 바쁘다. 둘째인 다섯 살과 막내인 세 살의 두 손녀를 위해 아내가 그네를 사왔다. 장난감들이 있어 집에 오면 놀게 되는 작은 방의 방문 틀에 그것을 매 주었다. 워낙이 손재주도 눈썰미도 없는지라 설명서를 보며 그걸 매는 데도 꽤나 땀을 뺐다.


예쁘다. 마치 녹색 스커트에 노란 셔츠를 입고 노란 머리를 두 가닥으로 내려뜨린 소녀 같다.


둘째가 올라타자 막내가 이내 울음을 터트린다. 막내의 무기는 첫 번째가 울음이고 두 번째는 얼음이다. 있는 목청껏 울어재끼는가 하면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냥 얼음처럼 굳어버린다. 말도 표정도 동작도 모두 중지, 그렇게 얼마간이고 굳어 있다. 결국 어른들로 하여금 제 언니를 달래 양보를 받게 하여 제 목적을 이룬다. 다행히 둘째는 어린데도 이해심이 많다. 동생이 하고 싶어 하니 먼저 해주게 하자거나 한 번만 하고 동생이 할 수 있게 하자 하면 아쉬워하면서도 동생에게 양보한다.


아이들이 오면 그냥 온 집안은 놀이터가 된다. 미끄럼틀에서 거꾸로 미끄럼을 타는가 하면 뒤로 물러났다가 발을 들고 앞으로 나오는 그네타기 요령까지 순식간에 터득했다. 종이란 종이마다 이해할 수도 없는 그림들을 마구 그려놓는가 하면 어디서 났는지 거울이며 벽이며 텔레비전에까지 스티커 세상을 만들어 놓는다. 그 속에서 나와 아내도 그들 놀이의 소도구가 된다.


다시 막내 아이가 그네를 타겠다고 한다. 둘째보다 대담하다. 조심스러운 큰아이보다도 훨씬 적극적이고 저돌적이다. “밀어줄까?” 하니 고개를 젓는다. 그네에 앉더니 뒷걸음으로 그네를 뒤로 나가게 한 다음 디디고 있던 바닥에서 발을 떼자 그네가 살같이 앞으로 나갔다 반동으로 그만큼 뒤로 간다. 멈춰질만 하면 아이는 다시 하던 동작을 반복한다.


저 어린 것의 어디서 저런 요령이 나오는지 신기하다. 둘째아이는 다소곳이 앉아 밀어달라고 한다. 그러니 옆에 있어줘야만 한다. 거꾸로인 셈이다. 작은 놈은 혼자 타고 큰 놈은 도움을 받아 타니 말이다. 또 하나 둘째 아이는 모든 게 다 제 것이라 여겨서인지 여유가 있지만 막내는 언니의 것에서 뺏어내야만 제 것이 될 수 있다는 생존의 법칙을 벌써부터 깨달은 것 같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엔 이북서 피난 와서 머물게 된 아저씨네의 나보다 세 살 아래 동생뻘 어린 아들이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는 날 위해 통나무 바퀴의 탈것을 만들어 주셨다. 그 동생과 나는 그걸 서로 끌어주며 함께 놀았는데 나는 그를 태워 끌어주었지만 그는 어려서 나를 끌어주지 못했다.


속이 상했다. 그런 나를 보며 어쩌다 이모나 할아버지가 한 번씩 끌어주기도 했지만 늘 내가 그를 끌어주기만 하는 꼴이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 나무에 그네를 매 주셨다. 그네는 나 혼자서도 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동생은 늘 내가 밀어주어야 했다. 나는 혼자였지만 그는 나중에 동생을 보았다. 아마 동생이었다면 지금 내 작은 손녀처럼 생존의 법칙을 찾아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내 손녀처럼 그러하지 않았다. 내가 타라 하면 탔고 어쩌다 혼자만일 때는 앉아 있기만 했다.


살아오면서 제대로 된 큰 그네를 타 보기도 했고 멋지게 그네를 타는 모습을 보기도 했지만 내겐 외할아버지가 매 주셨던 내게 꼭 맞던 그 작은 그네가 지금도 그립다. 내 손녀들도 그런 추억으로 이 그네의 기억을 간직하게 될까.


한참 타더니 작은놈이 그네에서 내린다. 큰 놈이 기다렸다는 듯 그네에 앉는다. 그러자 작은놈이 다시 그네를 타겠다고 한다. “할아버지, 엘이가 저만 타려고 해요!” 언니가 내게 도움을 청하자 작은놈도 잘 되지도 않는 말로 하아지, 어언니, 헤엔, 타요.” 하며 제가 또 타겠다고 한다.


문득 어린 날 그는 내 할아버지가 매 준 그네였기에 저도 타겠다고 당당히 고집 한 번 피워보지도 못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저 놈들은 다 같이 제 할아버지가 매 준 그네이니 제 것이라고 생각할 게다. 세상 모든 것이 누구의 소유냐에 따라 힘이 주어지지 않던가. 두 아이의 힘과 권리는 바로 내 할아버지란 것이요 그 할아버지가 내 편이라는 믿음이리라. 그래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는 무슨 힘이 있겠느냐마는 지금의 너희들에겐 그 어떤 것보다도 큰 힘이 아니겠느냐. 그래 할아버지가 너희의 가장 큰 백이다.


두 아이의 그네를 번갈아 밀어주다 작은아이의 손도 합세케 한다. 살그머니 내 손의 힘을 빼고 고 작은 손만으로 밀게 하는데도 그네가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 세상은 그렇게 작은 힘으로라도 밀어주면 큰 힘이 된단다. 작은 그네 앞에서 우린 같은 나이가 되어 즐거워진다. 어쩌면 더 작은놈이 먼저 그네를 타는 것보다 밀어주는 재미를 터득한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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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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