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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6-09 23:00:10
  • 수정 2022-06-25 1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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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정문에서 홍제천을 끼고 우측으로 돌면 인왕시장 방향으로 가게 되고, 좌측으로 돌면 포방터 시장 방향으로 간다. 양쪽 거리가 서로 왕복 3km 정도로 비슷하여 산책할 때면 마음이 가는 쪽으로 향한다. 포방터 시장 쪽으로 가면 홍제천에는 50여 마리가 넘는 청둥오리가 매년 새끼를 번식하여 대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으며,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먹고 사는 왜가리와 가마우지도 가끔 눈에 띄기도 한다. 맑은 물에는 불교 신도들이 방생한 것으로 보이는 팔뚝만한 금붕어와 10여 마리의 큰 잉어가 살아가고 있으며, 자라와 거북이들도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백 수천이 넘는 작은 고기도 같이 살고 있는 어느 농촌의 시골 냇가 같은 자연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포방터라는 지명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서울 외곽 방어를 위해 조선의 16대 인조(仁祖, 재위 1623~1649) 때 총융청과 수어청이 사격 훈련을 했던 곳으로, 6.25 전쟁 때에는 퇴각하는 북한군을 공격하기 위하여 포를 설치했던 곳이다. 1970년대 초부터 자연스럽게 주민들이 모여 살면서 시장이 형성되었고, 이 후 2014년에는 포방터 시장으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포방터 시장 입구 다리 끝에는 손으로 조작하면 포 소리도 들을 수 있도록 포 조형물도 설치해 놓았다.


그런데 포방터 시장을 가는 다리 입구에 꼰대 꽈배기라는 조그마한 가게가 있다. 중년 부부가 직접 튀겨 파는데 마음씨가 친절하기도 하지만 늘 깔끔하여 친밀감이 가는 가게다. 주말이면 착한 코다리식당에서 집사람과 함께 나만의 특별 메뉴인 연포탕을 먹은 후, 후식으로 꽈배기 집에 들르는데 식감도 부드럽고 맛도 좋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 부부도 단골손님이다. 주문하지 않아도 알아보고 꽈배기 세 개를 봉지에 넣어 주는데, 이 2,000원 짜리 꽈배기를 들고 개천 옆 벤치에 앉아 홍제천 냇물을 벗 삼아 잠시 마음의 여유를 즐기며 맛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당뇨와 신장병 때문에 나는 잘 먹지 않지만, 벤치에 앉아 있는 동네 이웃 분들과 맛있게 나누어 먹는다.


꽈배기는 꼬다+배기의 두 개의 단어가 합해진 합성어로 배기는 동사 배다에서 파생된 명사로 무엇을 스며들게 한 것의 뜻이다. 따라서 밀가루 반죽을 겹으로 꼬아 기름에 배도록 튀긴 음식이 바로 꽈배기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이 꽈배기는 중국 교포들이 이 땅에 자리 잡고 살면서 중국 전통 꽈배기 마화(麻花)와 요우티아오(油条)를 혼합해서 우리 식성에 맞게 만들어 설탕을 묻혀 먹도록 개발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꽈배기는 중국의 전통 꽈배기 마화(麻花)보다는 부드러워 식감은 요우티아오(油条)에 가깝다. 마치 유부(油腐, 아부래기)에 우유를 찍어 먹는 맛과 비슷하다. 이런 꽈배기의 역사는 중국의 두 가지 전통 꽈배기인 마화(麻花)와 요우티아오(油条)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먼저 마화(麻花)의 역사부터 알아보기로 하겠다. 춘추시대 진() 나라의 문공(文公, BC 697-BC 628) 중이(重耳)가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죽음을 애도 하는 한식절(寒食節)과 마화(麻花)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있다. 문공 중이(重耳)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다른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자 신하였던 개자추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삶아 주었다고 한다. 그런 고초를 겪은 후 중이는 왕위에 올라 문공(文公)이 되지만 잠시 개자추에게 포상하는 것을 잊었다. 개자추는 굳이 자신의 공을 겉으로 내세우기 싫어했기 때문에 그대로 어머니와 함께 깊은 산속으로 은거했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문공(文公)은 신하들에게 산에 불을 놓게 했다. 개자추가 소문난 효자였기 때문에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산불을 피해 산에서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자추와 그의 어머니는 기대와는 다르게 그대로 산속의 큰 버드나무를 끌어안고 불에 타 죽게 되었는데, 그 버드나무 구멍 속에는 앞으로 정치를 청명(淸明)하게 해 달라는 내용의 혈서도 남아 있었다 한다. 문공은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산에 불을 놓은 동지가 지난 105일 째 되는 날을 한식(寒食)이라 하고, 그 날에는 불을 피우지 말고 찬밥과 튀김 같은 간식으로 끼니를 대신하도록 했다. 그리고 불에 타 죽은 음력 3월 초닷새 날을 청명절(淸明節)이라 하고 이후 한식에서 청명절까지의 3일 동안은 정성껏 성묘하며 조상을 애도하도록 하는 날로 정했다 한다. 또한 민가에서도 불()과 관련된 일체의 화식(火食)을 금하고, 이 날만큼은 한구(寒具)라는 차가운 튀김 간식을 먹게 했다. 그 중에서도 찹쌀가루에 꿀을 넣고 반죽을 하여 기름에 튀긴 간식도 즐겨 먹었는데, 이것이 바로 마화(麻花)라는 꽈배기의 원조 거여(粔籹, 쥐뉘)라 한다. 거여는 우리의 약과(藥果)와 비슷한 유밀과(油蜜果)와 유사하다. 이러한 역사적 전설로 짐작해 보면 마화(麻花)라는 꽈배기는 최소한 2,500여 년이라는 역사가 흘렀음을 알 수 있다.


꽈배기는 삼국시대(三國時代) ()의 승상이던 제갈량(諸葛亮, 181234)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227년에 위()를 공략하기 위해 유비(劉備)의 아들 유선(劉禪)에게 전출사표(前出師表)를 올리고, 228년에는 후출사표(後出師表)를 올리는 일이 있었다. 우리의 정치 사회에서 정치에 발을 딛기로 할 때 흔히 출사표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출사표라는 말은 사실 제갈량이 처음으로 사용했던 말로 군사를 이끌고 북방에 있는 위()를 공략하기에 앞서 그 굳은 의지를 왕에게 올렸던 글이다.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는 진()의 이밀(李密, 224~287)이 무제(武帝)에게 올린 진정표(陳情表)와 당()의 한유(韓愈)가 쓴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과 함께 중국의 3대 명문(明文)으로 꼽는다. 출사표(出師表)를 읽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고, 진정표(陳情表)를 읽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며,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을 읽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우애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글이다. 그런데 제갈량이 출사표를 올리고 위()를 공략할 때 꽈배기가 군량미의 대용으로 쓰였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빠른 시간 내에 만들 수 있고, 대체적으로 연기가 적어서 적진 영역에서도 은밀하게 만들 수 있으며, 기름에 튀겨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으며, 잘 부패되지 않아 장기간 보관할 수 있고, 먼 거리까지 수송도 가능하고, 부식도 없이 아무 곳에서 간편하게 휴대하면서 전투 중에도 틈틈이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 군량미로 적당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중국 꽈배기를 말할 때 요우티아오(油条)를 빼고 말할 수는 없다. 중국인들이 아침 식사로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 요우티아오(油条)라는 꽈배기다. 마화(麻花)는 우리의 꽈배기에 비해 크기도 크고 식감도 비교적 딱딱해서 간식으로는 적당할지 몰라도 아침 식사용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요우티아오(油条)는 크기도 우리의 꽈배기처럼 작고, 식감도 부드러워 식사용으로 매우 적합하다. 요우티아오(油条)를 도우쟝(豆酱)이라는 두유(豆奶)와 함께 먹으면 아침 식사로 충분하다. 나도 교환교수로 체류했던 몇 년 간 아침 식사로 요우티아오(油条)를 두유(豆奶)에 찍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요우티아오(油条)는 송() 나라 상주(相州) 탕음(湯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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