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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아! 우크라이나’, 동맹과 힘없는 평화의 실체 - “병력 철수, 전쟁 안한다”…푸틴의 기만술에 당한 우크라 - 친러 우크라 전 대통령, 푸틴 지령받고 "나토 가입 철회" - 우크라이나 사태, 결코 머나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 기사등록 2022-02-25 14:09:08
  • 수정 2022-02-26 08: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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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철수, 전쟁 안한다”…푸틴의 기만술에 당한 우크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곧 일으킬 것이라는 미국의 첩보는 정확했다. 푸틴 대통령이 처음에는 러시아군 병력 철수라는 동영상을 띄우며 전쟁을 할 의도가 없고 또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결국 그 모든 푸틴의 말들이 기만술이었음이 확인됐다.


러시아는 24일(현지시간) 새벽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특별작전'을 선언하면서 전면적인 침공을 단행했다. 푸틴의 이러한 기만술은 과거 2014년 크림반도를 침공할 때도, 또 14년전 조지아를 침공할 때도 그러했다. 특유의 '가짜 깃발 작전'(false flag operation)을 내세우며 이웃나라들을 기만했던 것이다.


푸틴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에 친러시아 정권을 수립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하기 전 대국민 연설에서 “이번 군사작전의 목표를 우크라이나에서의 '탈나치화'와 탈군사화에 두겠다”고 했다.


여기서 탈나치화(Denazification)란 우크라이나에서 신나치 성향 인사들을 몰아내겠다는 의미인데 이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지도부를 제거해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하고 친러시아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탈군사화란 우크라이나의 주요 군사력을 무력화하고,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지원을 받아 무장을 강화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탈군사화와 탈나치화 목표가 달성돼야 군사작전을 중단할 것이라는 의미다.


▲ 러시아의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우크라이나 [사진=러시아 대통령궁]


[우크라 대통령, “홀로 남겨져 러시아와 싸우는 중”]


지금 우크라이나는 처참하다. 러시아의 일방적인 공격에 우크라이나는 변변한 대응조차 못하고 그대로 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나토군은 어디에 있느냐? 왜 우리를 도와 주지 않느냐?”고 울부짖고 있지만 미군과 나토군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만 하면서 접경지역에 대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우크라이나 영토로 진입하지는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자정께 텔레그램을 통해 "우리는 혼자 국가를 방어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멤버가 될 수 있다는 보장을 하고 있지 않고,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미군과 나토군은 왜 우크라이나에 진입하지 않고 주변에만 대기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우크라이나내로 들어갈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되어 있다면 당연히 나토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여 함께 방어를 하겠지만 지금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가입신청만 했지 들어가 있는 상황은 아니다. 미국 역시 우크라이나가 우방국이기는 하지만 군사동맹 관계는 맺고 있지 않다. 러시아는 바로 이러한 빈틈을 노린 것이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대러 경제 제재를 동시 발표하며 푸틴의 ‘돈줄 죄기’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아보려 했지만 이러한 제재 조치만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제재는 나중에 일어날 일이니 당장 우크라이나를 점령해 놓고 제재 문제는 다시 논의해도 된다는 러시아의 배짱이 통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푸틴은 “누구든 우리를 방해하거나 나아가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에 대한 위협을 조성하는 자들은 러시아가 즉각 대응할 것이며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후과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과 EU 등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진입한다든지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첨단 기술 수출 통제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퇴출 등의 제재를 가하면 러시아도 보복에 나설 것을 예고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과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약속했던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를 의지해 평화를 유지해 왔지만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그러한 평화협정이나 각서는 힘이 없을 때는 지켜지지도 않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입증해 주었다.


여기서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란 구(舊)소련이 우크라이나에 남긴 약 1800개의 핵탄두를 러시아로 넘기고, 미국과 영국, 러시아 3국이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약속한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의 유력지인 ‘르 피가로’는 “우크라이나는 당시 안보 보장을 위해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뜻도 있었으나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관리에 불안감을 느낀 미국과 영국이 경제 지원과 안보 보장을 대가로 러시아에 핵무기를 넘길 것을 종용했으며, 러시아 또한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내세워 자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것을 우려해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포기를 압박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사실 우크라이나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만 했더라도 나토군이 곧바로 우크라이나에 진입해 러시아와 맞서 싸울 수 있었다. 또 나토군이 개입하면 자동적으로 미군도 우크라이나 영토에 진입할 명분이 생긴다. 그런데 이렇게 나토군이 우크라이나에 진입을 하지 못한데는 우크라이나에 원죄가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나토에 가입했어야 했다. 아니 가입할 수가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한 이후에 곧바로 ‘탈 러시아정책’과 함께 ‘나토와 EU 가입정책을 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소련연방 구성국중 첫 번째로 나토협력국(NATO-PFP)에 참여했으며,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지원에 힘입어 성공한 오렌지 혁명 이후 출범한 친서방 정부는 대미 대나토 협력 관계를 강화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성사되는 듯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시민혁명으로 출범한 친서방 정부가 나토가입을 적극 추진하는 것에 대해 이를 저지하기 위해 2010년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그리고 야누코비치 당시 대통령은 2013년 나토 가입 확정을 일주일 여를 앞두고 돌연 나토 가입신청서를 철회했다. 사실상 나토 가입이 다 끝난 상황인데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사주를 받은 야누코비치 당시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나토 철회카드를 꺼내면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도 중단되고 더불어 EU 가입 또한 무산되게 된 것이다.


러시아는 결국 친 러시아 대통령을 세워 우크라이나의 나토 및 EU 가입을 막은 것이다. 그러나 이에 뿔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유로마이단‘이라 부르는 봉기를 했고, 결국 야누코비치는 대통령직에서 쫓겨나게 된다.


러시아의 앞잡이였던 야누코비치는 3년여의 짧은 재임기간동안 해외에서 들어온 차관 370억 달러(약 44조 5천억원)를 착복했고, 우크라이나내의 여러 공공기관들을 통해 엄청난 재산을 불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 러시아라는 뒷배를 믿고 부정을 저지른 것이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야누코비치 대통령 당시 나토에 가입만 했더라도 나토라는 동맹국이 지금의 우크라이나를 지켜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보다는 개인의 착복에 눈이 먼 대통령, 자신의 국민이 아닌 러시아의 푸틴에게 더 충성한 대통령이 지금의 우크라이나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진짜 평화와 가짜 평화]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나라도 힘이 있어야 지켜진다는 것이고, 더불어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일깨워준다.


우크라이나가 강력한 국방력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러시아가 감히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과거에 엄청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핵보유국이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강력한 반대로 결국 핵무기를 러시아에 반납을 했고, 그 후 우크라이나의 정치 지도자들은 스스로 국방력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강대국들끼리 맺은 알량한 각서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보장해 줄 것이라 믿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토라는 동맹국 가입을 친 러시아대통령이 발로 차버렸다. 그러니 지금의 비극을 겪으면서도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이것이 냉혹한 국제정세의 현실이니 말이다.


되돌아보면 이번 러시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를 놓고 영국·프랑스 동맹과 대결하던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방식과 너무나도 유사하다.


히틀러는 1938년 엄연히 주권국가였던 오스트리아에 군대를 보내 강제 병합하는 폭거를 자행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후 국제질서를 규율한 베르사유 체제에 본격적으로 도전한 것이지만 영국·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주요국들은 말로만 항의를 했지 독일에 대한 군사적 제재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자 히틀러는 1938년 9월, 군사훈련을 핑계로 75만 대군을 체코슬로바키아 접경지대에 투입한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당시 프랑스의 동맹이었고 또 프랑스는 영국과 동맹이었기에 자동적으로 이 전쟁에 끼어들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때 히틀러와 협상에 나선 이가 그 유명한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총리였다. 체임벌린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 영토만 독일에 넘겨주고 전쟁을 끝내려 했다. 그해 9월 27일 체임벌린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머나먼 나라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벌이는 다툼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서 참호를 파고 방독면을 써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기이하며 믿기 힘든 일입니까?”라면서 전쟁을 하지 말고 평화를 찾자고 주창했다. 참고로 런던에서 '머나먼 나라'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까지 직선거리는 1천32㎞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주선으로 9월 29일 독일 뮌헨에서 히틀러, 무솔리니, 체임벌린과 프랑스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가 참석한 가운데 체코슬로바키아의 운명을 결정짓는 회담이 열렸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당사자이면서도 회의에 초대받지도 못했다. 히틀러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예정일을 하루 앞둔 9월 30일 새벽 이들은 뮌헨협정을 체결하고 결국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지역을 독일에 할양하기로 했다. 힘이 없는 체코슬로바키아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뮌헨협정을 체결한 영국의 체임벌린은 이로써 평화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영국에 귀국하자마자 그는 환호하는 군중에 둘러싸여 이렇게 말했다. "영국 총리가 독일에서 평화를 가지고 명예롭게 귀환했습니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Peace for our time)라고 믿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평화롭게 주무십시오."


그러나 체임벌린이 말했던 그 평화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의 남은 국토마저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세계 제2차 대전의 막이 열리게 된다.


여기서 체임벌린의 연설 중에서 두 대목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머나먼 나라‘라는 말과 ’우리 시대의 평화‘라는 구절이다. 이 문구는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조롱받는 ’역사적인 연설‘로 손꼽힌다.


바로 이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나라를 우크라이나로 바꾸면 역사가 또다시 리메이크하듯 재연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코 머나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결코 남의 일도 아니고 머나먼 나라의 일도 아니다. 바로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당장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경제제재는 그 다음일이다. 대만이 공격당하면 당장 우리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기 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나라였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시진핑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중국만 그러한가? 북한은 또 어떤가? 우크라이나 다음은 대만, 남중국해 등 아시아가 긴장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여러 군데서 나온다. 당연히 여기에는 한반도도 포함된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를 향해 “평화를 원한다”고 호소했다. 그렇다고 평화가 지켜졌는가? 또다시 강조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지구 반대편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곧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


전쟁이 아닌 평화의 길로 가려면 우리가 힘을 길러야 하고 중국과 북한에게 한국을 공격하다간 자신들의 국가도 무너질 수 있다고 분명히 경고해야 한다. 힘이 없으면 당한다. 여기에 동맹은 힘을 뒷받침해주는 배경이다. 제발 대한민국이 정신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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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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