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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1-25 18: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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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뉴시스]


사람은 이 세상에 올 때를 몰랐던 것처럼 세상 떠날 날을 새까맣게 잊고 산다. 세상 떠날 준비는커녕 마치 천 년을 살 것처럼 소유욕에 끌려 스스로 돌아볼 겨를이 없다. 제행무상의 이치로 볼 때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가진 것 말고도 가져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이 많은 탓에 시와 때를 망각하며 살기 쉽다.


얻는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그보다 더 힘겨운 일은 얻은 것을 지키는 일이다. 바둑 세계에서 기성으로 칭하는 대만의 오청원9단이 이런 말을 했다. “지고 있는 바둑을 역전시키기도 힘들지만 이기고 있는 바둑을 지키기가 더 어렵다고 수성의 어려움을 지적해 줬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욕망의 세계를 거닐며 그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 매몰하고야 마는 존재다.


옛날 춘추 말기 때, 월나라 왕 구천과 오나라 왕 부차가 숙적으로 다툴 때다. 구천은 지혜로운 신하 범려의 건의를 묵살한 채 부차와 싸우다 패배한 후 회계산까지 밀렸다. 사면초가 신세가 된 구천이 범려를 다시 불러 비책을 물었다.


“지만하는 자에게는 하늘의 도움이 있다 하였습니다. 예를 두터이 하시어 오나라 왕을 섬기소서.” 이 말을 들은 구천은 부차에게 항복하고 국력의 회복을 기다려 지만한 지 22년 만에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 기원 전 473년의 일이다. ‘지만’이라는 뜻은 활을 당기면서 쏘지 않는 형상, 즉 만반의 준비를 끝낸 대기 상태를 말한다. 공을 세운 범려는 갖고 있던 재산을 친구들과 향당에 나누어 주고 관직을 버리고 몸을 숨겼다. 후일 도 땅에 살면서 큰 부자가 되었는데 세상 사람들이 그를 도주공이라 불렀다.


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는 뇌쇄적이면서도 차갑고 신비한 이미지로 1930년대 할리우드의 아이콘이 됐다. 안나 까레니나와 마타하리 등으로 절정에 오른 가르보는 36세에 은막을 떠났다. 팬들에게 늙어 가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게 은퇴 이유였다. 뉴욕에서 8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은둔 생활을 함으로써 많은 팬들에게 젊은 시절의 그의 이미지를 남긴 것이다.


떠날 때를 알고 미련을 끊어내고 떠나는 사람은 그의 뒷모습도 아름답다. 때가 되면 나서야 할 일이면 나서야 하고 때가 되어 물러설 일이면 물러나야 한다. 인생에 있어 시기 포착처럼 중요한 일이 없다. 누구에게나 때가 있다. 그건 꿈이면서 희망이기도 하다.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고, 잊어야 할 때 잊지 못하고, 버려야 할 때 버리지 못하면 때를 잃고 만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없다. 역사란 물처럼 도도히 흘러간다. 인생은 흐른다. 애착의 끈을 잡고 허송하기에는 우리네 인생이 너무 짧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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