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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드러난 푸틴의 발톱, 에너지 무기화 현실이 됐다 천연가스 러시아 의존, 미국의 강력한 우려가 현실로 2021-10-20
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 러시아 푸틴대통령 [사진=러시아 대통령궁]


[우려가 현실로... 푸틴의 에너지 무기화]


러시아의 푸틴이 결국 에너지 무기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동안 미국 등 서방세계가 그토록 우려했던 일이 결국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앞장서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거쳐 독일로 이어지는 천연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1을 개통했고, 이어 러시아 서부에서 발트해 해저를 지나 독일 북부로 연결되는 천연가스 수송관인 노르트스트림2를 공사할 때 미국은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라며 강력히 반대한 바 있다.


그러나 탈원전을 추진 중이라 천연가스 확보가 시급한 독일은 메르켈 총리가 앞장 서 지난 7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동의를 얻어냈다. 당시 메르켈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유럽에 천연가스를 충분히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했으며 푸틴은 이를 반드시 지킬 것”이라면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그러한 공언과는 달리 푸틴 대통령이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의 공급을 제한하면서 결국 유럽은 심각한 에너지난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푸틴은 지난 2009년에도 우크라이나를 거치는 천연가스관을 열흘 넘게 잠가 프랑스·이탈리아까지 피해를 입힌 적이 있다.


물론 푸틴은 지난 13일,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천연가스) 공급을 조절한다는 주장은 정치적 동기가 다분한 뒷말에 불과하다”며 “유럽이 요청하면 언제든 공급량을 늘릴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푸틴의 이러한 해명은 최근 1년 사이 천연가스 값이 5배쯤 오르는 글로벌 에너지 대란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러시아가 오히려 앞장서서 이를 해소하겠다면서 안심시킨 발언이지만 이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가즈프롬이 공급량 동결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18일(현지 시각)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가 그렇다.


FT는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즈프롬은 다음 달인 11월, 우크라이나를 관통해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동결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이로 인해 유럽 각국의 도매용 천연가스 가격은 하루 사이 최고 18% 급등했다”고 전했다.


또한 “대표적인 천연가스 선물 거래 시장인 네덜란드 TTF거래소에서는 이날 불과 5시간 사이에 메가와트시(MWH)당 89유로에서 100유로로 올랐다”고도 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량 축소에 따른 가격 급등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우려는 푸틴의 공언과는 달리 이미 최근 러시아의 대 유럽 천연가스 공급량이 감소했다는 점이다. 글로벌 에너지 정보 분석 업체 ICIS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서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관의 하루 평균 공급량은 지난달 302㎥에서 이달 261㎥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에서의 천연가스는 냉난방 원료로 쓰일 뿐 아니라 화학제품, 유리, 종이 등의 가공에도 두루 쓰인다. 특히 유럽은 전기 생산 연료의 20%를 천연가스에 의지하고 있고, 이 비율은 계속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럽 사회가 탈원전을 하면서 원전을 통한 발전 비율을 줄였다. 그리고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늘리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율이 본궤도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이런 상태에서 일단 원전 비율부터 줄이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러시아가 공급하는 천연가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는 “신재생에너지 시대에 첫 번째로 마주한 것은 전례 없는 글로벌 에너지 위기 사태”라고 지적했다.


현재 유럽 사회의 전기 생산 연료 중 천연가스 비율은 영국(36%), 이탈리아(45%), 네덜란드(59%), 아일랜드(51%) 등에서 특히 높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천연가스 전체 수요의 40%를 러시아가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에너지대란 자초한 유럽]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럽은 올해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프랑스는 천연가스 가격을 올들어 이미 44%나 인상했음에도 10월 들어 또다시 12.6% 올렸다. G7 국가 중 유일하게 원자력 발전을 이용하지 않는 이탈리아는 전기 요금과 가스 요금을 각각 29.8%, 14.4% 올렸다. 영국의 전기 요금도 1년 만에 7배로 뛰었다.


이렇게 천연가스 요금이 폭등하게 된 배경에는 역시 대체 에너지의 발전이 예상처럼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EU와 영국은 각각 전체 발전량의 16%와 25%를 풍력에 의존하는데 올해에는 예년과 같은 바람이 불지 않아 풍력을 통한 전기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천연가스에 의존하면서 가격은 폭등하게 된 것이다.


결국 유럽사회의 이러한 에너지 대란은 충분한 준비나 대비도 없이 덜컥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공급이라는 명제에 사로잡혀 무리하게 탈원전을 포함해 에너지 전환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의 제프 커리 글로벌상품 책임자는 “각국에서 필요 이상의 풍력, 태양광 시설들이 생기면서 신재생에너지 산업에는 과잉 투자된 반면 화석연료 산업은 급격히 빈곤해졌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대란의 후유증은?]


에너지 대란은 유럽사회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 역시 석탄의 주요 공급처인 호주와의 갈등 때문에 석탄 수입에 어려움이 생긴데다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현실을 무시한 탄소중립 정책 추진으로 당국이 엄격한 탄소 배출 억제책을 시행하면서 전력난이 가중되고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당장 올 겨울은 그동안 어느 겨울보다 혹독한 날들을 지내야 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쏟아진다. 이는 당연히 코로나 사태의 여파를 극복해가고 있는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당장 천연가스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원유·석탄 가격도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가격은 19일(현지시간) 배럴당 82.96달러로 7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북해산 브렌트유 역시 9월초부터 약 19%, WTI는 약 21% 급등세를 보일 정도로 두 달간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국제유가는 글로벌 에너지 공급 부족이 점점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에 계속 상승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더더구나 유럽의 천연가스 공급 부족에 구원투수로 등장했던 러시아가 지원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에너지 시장이 다시 위기감에 휩싸였다.


여기에다 중국의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가운데 세계 최대 에너지소비국인 중국이 국내 난방수요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또한 부각되고 있다.


결국 천연가스 부족이 원유 수요 증가로 이어지면서 화석 연료를 줄이려는 탄소중립정책 또한 어쩔 수 없이 후퇴할 수밖에 없는 난감한 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당장 현실에 부딪친 에너지 부족도 문제지만 이로 인한 산업에의 충격 또한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유럽 각국은 향후 수년 내 내연기관차 생산을 중단하고 전기차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지만 과연 지금 같은 에너지 위기가 지속된다면 그러한 계획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도 나온다.


전기차 시대에는 에너지 위기가 더욱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에너지 전문가인 대니얼 여긴은 블룸버그에서 “유럽을 강타한 에너지 대란은 (탄소중립을 추진 중인) 전 세계에 주는 불길한 신호”라고 경고했다.


하나 더, 이러한 에너지 대란은 유럽사회가 러시아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 서부에서 발트해 해저를 지나 독일 북부로 연결되는 천연가스 수송관인 노르트스트림2는 이미 공사를 마친 상태다. 언제 사용 승인이 나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주요 4개 경로(독일·벨라루스·우크라이나·터키)의 천연가스 수송관이 완성돼 푸틴이 유럽의 에너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의 푸틴은 미국이 그렇게도 우려했던 대로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 정치나 외교, 안보 등의 이슈에서도 유럽 등에 압력을 가할 때 천연가스 공급 카드를 흔들어댈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러시아는 유럽 위에 군림하면서 다양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이득을 얻으려 할 것이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유럽의 입장에서 ‘절대 강자’가 된 러시아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경제 전문 방송 CNBC는 “유럽이 단기적으로 러시아에서 천연가스 수입을 늘리면 당장에는 안도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러시아에 의존만 하다가는) 중·장기적으로는 대응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유럽에서는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키워 에너지 자립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 2030' 계획을 통해 탈원전을 포기하고 원자력 발전 비중을 대폭 높이겠다고 선언한 것도 바로 이러한 에너지 자립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프랑스가 주축이 된 유럽 10개국 경제·에너지 장관들이 “기후 변화와 싸우기 위한 최상의 무기는 원전”이라는 내용의 공동 기고문을 발표한 것도 이러한 유럽사회의 에너지 자립정책에 기반을 두고 있다.


*관련기사: [정세분석] 프랑스가 에너지정책 대전환을 선언한 이유?(10월 15일)

*관련영상: [Why Times 정세분석 1084] 프랑스가 에너지정책 대전환을 선언한 이유?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천연가스 공급을 둘러싸고 러시아가 유럽 사회에 압력을 가하게 된다면 미·러 간 갈등이 격화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은 그러한 상황을 이미 예측하고 지난 7월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노르트스트림2의 가동에 동의할 것을 요청하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이든 미 대통령은 ‘러시아가 새 가스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면 추가 제재를 가하겠다’는 단서를 달기도 했었다.


현재 노르트스트림2에 대한 사용 승인은 독일이 정권 교체기를 맞아 늦어지고 있다. 지난 9월 총선에서 원내 1당에 올라선 중도좌파 사민당이 연정 파트너로 점찍어 협상 중인 녹색당과 자유민주당은 모두 반(反)푸틴 성향이다. 일부 유럽의회 의원도 독일에 노르트스트림2 사용을 승인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앞으로 또 어떤 문제를 낳게 될 지도 관심거리다.


[에너지대란, 세계 경제를 위기에 빠뜨릴 것]


전 세계의 에너지 대란은 국제 유가를 연일 최고치로 끌어 올리면서 세계 경제를 ‘슬로플레이션’(느린 성장+물가상승)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FT는 프랑스 BNP파리바은행의 루이지 스페렌자 수석경제학자의 말을 빌어 “현재 상황은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슬로플레이션에 가깝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스태그플레이션’이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경기침체)과 인플레이션을 합성한 조어로, 경기 침체와 물가상승이 동반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지난 1970년대 국제 유가 폭등으로 인한 ‘오일 쇼크’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슬로플레이션으로 비교적 낮은 실업률과 높은 물가 상승률이 단기적으로 동반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스페렌자의 설명이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2010~2011년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슬로플레이션이 발생했던 것과 현재 상황이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을 지낸 스티븐 로치 예일대 석좌교수도 CNBC와의 인터뷰에서 “‘공급망 병목현상(공급망 차질로 제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이 세계 곳곳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1970년대 목격한 스태그플레이션을 연상시킨다”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도 지금은 인플레이션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전 세계적으로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높아지는 가운데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하락하고 있다. 이런 현상 때문에 지난 9월 말 Fed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이전 전망보다 0.8%포인트 오른 4.2%로 예측하며,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이전 전망보다 1.1%포인트 내린 5.9%로 조정했다. 우려가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FT도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렇게 세계 경제는 지금 혼돈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당연히 기업들은 비상체제에 돌입하고 있다. 이렇게 에너지 대란은 단순한 에너지 문제로만 그치지 않고 전 세계 경제 체제 자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수시로 급변하는 세계 경제 상황을 주목하면서 기업과 공동 대응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상황을 지켜만 보기에는 지금의 글로벌 환경이 너무 긴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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