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메뉴 닫기

주소를 선택 후 복사하여 사용하세요.

뒤로가기 새로고침 홈으로가기 링크복사 앞으로가기
[김형석칼럼] 김원웅 광복회장에게 드리는 공개 질의서 2020-08-25
김형석 whytimes.pen@gmail.com


▲ 김원웅 광복회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 광복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민족반역자를 영웅이라고 칭송하고 친일청산에 반대하는 일부 야당 인사들을 비판했다. 또한 일부 언론이 과거 자신이 공화당 사무직원으로 일한 것을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고 합리화 한 것으로 왜곡 보도를 하고 있다며 이를 비판했다.[사진=뉴시스]


김원웅 광복회장에게 묻습니다. 광복절 75돌을 맞아서 귀하가 발표한 기념사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코로나19로 인해 홍역을 치루는 가운데 수해까지 겹쳐 고통당하는 마당에 무슨 이유로 그런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발언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광복회는 1965년 2월 27일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1인이던 이갑성을 초대 회장으로 독립운동가와 유족들이 결성한 단체이며, 정관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 유족들이 구성한 단체로서 '민족정기 선양 및 회원 간 친목'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었습니다. 그런 광복회가 귀하의 기념사로 인해 정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광복절 기념사의 전문을 읽어보니 크게 세 가지의 오류가 눈에 띄었습니다.


첫째, "어떤 국가든 화폐 속의 인물은 국가 정통성의 상징입니다. 미국의 조지워싱턴, 프랑스의 드골, 인도의 간디, 베트남의 호찌민. 이들은 그 나라의 화폐 속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입니다. 전 세계에서 화폐 속의 인물에 독립운동가가 없는 나라는 대한민국 한 나라뿐입니다."라는 부분입니다.


귀하가 지적한 내용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 존경받는 이 위인들도 모두가 흠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 한 사람만 지적하자면, 미국의 조지워싱턴은 21세이던 1753년 버지니아민병대에 입대하여 연대장이 되었고, 영국군 정규군에 편성되어 프랑스-인디언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조지워싱턴은 친영파로서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인물이지만, 미국에서는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둘째, "최근 광복회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관련 자료를 독일정부로부터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안익태가 베를린에서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하연주회를 지휘하는 영상이 있습니다.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한 나라뿐입니다."라는 부분입니다.


귀하는 안익태가 베를린에서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하연주회를 지휘하는 영상을 입수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상은 2006년 독일 유학생 송병욱에 이어, 지난 해 이해영 교수가 공개한 것을 또 다시 공개한 것이지요. '만주국 축전곡'은 현재 악보도 음원이 모두 남겨져 있지 않고 7분 20초짜리 영상만 남았는데, 이번에 광복회가 그 가운데 절반 분량의 3분 40초짜리로 편집하여 언론에 공개하였지요. 왜 그랬나요? 너무 길어서, 아니면 정치적인 감동이 적어질까봐?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 언론이 그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어제까지 그 곡을 듣고 댓글을 올린 250여개 가운데 95%가 친일적인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고 적었더군요. 지금이라도 그 영상 전체를 음악학계에 공개하여 그 내용이 친일 음악인지, 아닌지? 여부를 검증받기를 제안합니다.


음악가가 일본의 위성국인 만주국 건국을 축하하는 곡을 작곡하고 지휘했다는 이유만으로 민족반역자가 됩니까? 만약 그런 판단이면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베를린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을 비롯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지식인은 모두 민족반역자입니까? 안익태가 세계 최고의 음악무대인 베를린필에서 공연한 것은 손기정이 마라톤 우승으로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선양한 것에 비교할만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같은 안익태의 음악 활동을 민족의 자랑으로 소개하며 자긍심을 높였습니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왜곡, 폄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와 관련해서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귀하는 안익태가 제국음악원에 가입한 것이 친 나치라고 주장하더군요. 당시 제국음악원의 회원은 17만명으로 독일에서 활동한 음악가 대부분이 망라되었으며, 회원증에는 "제국 안에서 근로 허가(지휘자 겸 작곡가)를 부여함"이라고 기재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독일에서의 취업허가증이었고, 귀하가 말하는 생계형이었습니다. 안익태가 제국음악원 회원이 된 것은 유럽에서 음악활동을 계속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또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한 나라뿐입니다"라고 선동하시더군요. 결코 안익태는 민족반역자가 아닙니다만, 설령 작곡자의 행적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국가를 바꾸는 것은 가당치가 않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국가에 대한 논쟁은 있었습니다.


미국의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 Spangled Banner)’은 영국 술집에서 부르던 노래인 ‘천국의 아나크레온에게’의 곡조를 차용한 곡입니다. 독일 국가 ‘독일의 노래(Deutschlandlied)’는 가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팽창주의를 상징한 1절과 성차별적 내용이 있는 2절은 제외하고 3절만 부릅니다. 이들 국가(國家)는 논란이 있어도 전통의 국가(國歌)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왜냐구요? 국가는 세대를 넘어 국민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김구 선생은 환국을 앞둔 1945년 11월에 펴낸 ‘한국애국가’에서 ‘애국가가 광복 운동 중에 국가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기술했습니다. 이렇듯 애국가는 광복군이 부르던 군가이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눈물짓던 국외 교포들의 망향가이며, 국가대항전이 열릴 때는 온 국민이 열광하며 부르던 응원가였습니다. 심지어 4.19 현장과 5.18 현장에서도 불리어졌습니다. 지난 80여년간 애국가만큼 대한 국민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고 정체성을 일깨워 준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애국가를 부정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 참에 한 가지 더 물어봐야 할 것이 있네요. 귀하께서는 "안익태의 애국가 곡조는 불가리아 민요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를 표절한 것이어서 애국가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더군요. 하지만 애국가 표절 의혹은 1978년에 공석준 전 연세대 음대 교수의 '애국가 표절 시비에 관한 소고'라는 논문을 통해 표절이 아닌 것으로 정리가 된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절 문제를 재론하려면, 그 전에 음악학계에 표절 여부를 판단해주기를 요청하기 바랍니다.


​셋째, "서울현충원에서 가장 명당이라는 곳에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자가 묻혀 있습니다."라는 부분입니다.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풍수지리설을 믿지 않는 나의 입장에서는 어디가 가장 명당인지를 모르겠습니다만, 평소 귀하의 언행으로 보아 박정희 대통령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립군 토벌에 앞장 선 적이 있습니까? 역사학자인 내가, 우리 지식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면 정확하게 공개해주기 바랍니다.


또 "해방 후, 군 장성과 국방부 장관을 지낸 자입니다. ‘조선 청년의 꿈은 천황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야스쿠니신사에 묻혀 신이 되는 것이다. 그가 한 말입니다."라는 부분입니다. 이 말을 한 그가 누군지, 그 말이 기록된 출처는 어디인지도 분명하게 밝혀주기 바랍니다.(혹시 백선엽 장군을 대전현충원에서 파묘하기 위해서 날조하려는 명분은 아닌지, 그래서 또다시 국론 분열을 조장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최근에 '친일파 청산'과 '애국가 바꾸기'를 외치는 주장 가운데 역사적 사실을 날조하고 왜곡하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조지워싱턴은 영국군의 영관 장교로 프랑스군은 물론 인디언을 토벌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참전을 통해 영국군의 군사 전술과 장단점을 훤히 꿰뚫게 되었으며 독립전쟁에서 승리하는 중요한 자양분으로 삼았습니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에서 6.25 한국전쟁을 치룬 마당에 일본군 출신의 장군들을 무조건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국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결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중한 시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광복절 75주년을 맞아 온 국민이 광복을 축하해야 할 기념사의 내용이 편향된 역사인식으로 점철된 일방적인 주장이 된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어느 일방의 편파적인 주장보다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친일 잔재 청산문제'를 진지하게 의논해야 할 때입니다. 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국가가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더 이상 역사를 왜곡하지 말고, 저의 물음에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 김형석(역사학자, 대한민국사연구소 소장 겸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장)

사회

국방/안보